'Call me by your name, I'll call you by my name.'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서
엘리오와 사랑을 나누던 올리버가 속삭이는 말이다.
흠잡을 데 없이 매력적인 남자 올리버와 미소년의 솜털이 아직 남아있는 17살 소년 엘리오.
위태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던 그들의 관계의 형상은
상대를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 부르며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이르러 사랑에 취한 사람들의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이 나타난다.
내가 당신인 것 같고, 당신이 나인 것 같은 마음의 밀착의 상태가 사랑의 극치 아니고 뭣이겠는가.
당신이 나를 부르는 방법이 당신과 나의 관계를 규정한다.
호칭은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의 상태에 대한 색깔이고 음표이다.
당신이 나를 '미'로 부르면 나도 '미'나 '솔'로 대답을 할 것이고
내가 당신의 외투의 색을 '세루리안 블루'로 색칠하면 당신은 푸른색을 좋아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담백한 친구로 지냈던 00샘이 교감이 된 이후,
한번도 그를 '교감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는 내게 교감이 아니라 그냥 절친 샘이기 때문이다.
"앤 셜리예요. 하지만 부탁이니까 코델리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래도 만약, 정 앤이라고 부르시려면 'e'자가 끝에 있는 철자법으로 불러주세요."
자신의 이름을 묻는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앤이 하는 말이다.
Ann과 Anne은 엄청난 차이이다.
리어왕의 막내딸 코델리아처럼 살고 싶었던 앤이 그 소박한 품격을 잃지 않게 될 힘이 되는 징표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던 백석 시인이 고결할 수 있었던 짧은 형용사 하나, '높고'처럼.
어젯밤에 경숙이, 은선이, 기환이를 만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쐬주를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중요한 논의를 했다.
'내가 당신을 부르는 방법'에 대한 깊은 고찰 끝에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모든 이성에 대한 호칭은 통일하는 걸로.
나는 앞으로 모든 남자를 '자기'로,
경숙이는 '오빠'로,
기환이도 '자기'로,
은선이는 '연성아빠'로.
모두 각 자의 집구석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들이란다.
술 잔을 기울이며 연습을 몇 번 했다. 겁나 재밌었다.
치매에 걸리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빵꾸가 난다고들 한다.
정신없는 할매(할배)가 된 상태에서
병간호하는 남편(아내)을 그동안 남몰래 사랑했던 사람 이름으로 부르면 큰일 아닌가, 뽀록 아닌가.
그 대책을 세운 것이다.
탈 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유.비.무.환.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나를
'선희야.'라고 부를 때
가장
설
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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