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라는 말에 종신보험을 들다>
.손택수.
자기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딱딱하게 이어지던 대화 끝에
여자 후배의 입술 사이로 무심코
튀어나온 자기, 어
여자 후배는 잠시 당황하다
들고 온 보험 서류를 내밀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한순간 잔뜩 긴장하고 듣던 나를
맥없이 무장해제 시켜버린 자기,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무 때고
꽃잎에 이슬 매달리듯
혀끝에 자기라는 말이 촉촉이 매달려 있는가
주책이지 뭐야,
한 번은 어머니하고 얘기할 때도 그랬어
꽃집 앞에 내다 논 화분을 보고도
자기, 참 예쁘다
중얼거리다가 혼자서 얼마나 무안했게
나는 망설이던 보험을 들기로 한다
그것도 아주 종신보험으로 들기로 한다
자기, 사랑에 빠진 말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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