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시답지 않은 대화 중에
이상하게도 문성근이가 참 섹시하게 느껴진다, 고 했더니
남편 왈, 문성근이? 문익환이 아들, 그 노빠? 고를 바에 젊고 좋은 놈 좀 고르지
쎄고 쎈 남자 중에 아무도 안 가질 것 같은 남자를 고르냐고 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어울렁 더울렁 무던해 보이는 가면 아래,
까시랍고 깐깐한 나의 기질을 누가 알아챌까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어설픈 동행보다는 혼자가 훨씬 낫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홀로일 때가 많지만
사실은 나의 감정을 거스르는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이다.
김 안나고 뜨거운 나의 이 괴팍한 성질머리를
젊은 시절에는 무난한 사회성이라는 포장지로,
혹은 소란스러운 웃음소리의 위장품으로
대충 가리며 살았지만
수리불가한 중고품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감에 따라
본색이 저절로 드러나는 형상이 되고 있다.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지 뭐.'
'견딜 수 없는 기질의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은 피곤해, 고역일 뿐이야.'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씨는 후회스러운 일 중의 하나로
젊은 시절, 억지스럽게 친구관계를 유지하느라 낭비한 시간과 열정을 얘기했다.
공감 100%였다.
주렁주렁 곁에 누군가를 매달고 있어야 삶을 잘 살아온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은
혼자만의 공간과 고요의 시간의 견뎌내지 못하는 영혼의 왜소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같이 있어도 혼자인듯 편한 친구와 같이 있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틈입하지 못하는 고요한 충만의 시간도 오롯이 알찌다.
좋다,
권태롭게 평화로운 요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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