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어
주일의 점심은 대개 전주대 정문 쪽의 <이비가>에서 먹는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위치해 있어서 편리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 집의 짬뽕맛은 최고이고,
우리 엄마는 짜장면을 엄청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성탄절인 오늘도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서울을 가는 바람에
엄마와 둘이서 나란히 앉아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탕수육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드렸지만 치아가 좋지 않은 엄마는
이내 뱉어내셨고 여느 때처럼 짜장면을 잘게 잘라 숟가락에 담아 입에 넣어드렸다.
떠 넣어드리는 짜장면의 반 그릇 정도를 다 드실 즈음,
옆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하시던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 중의 노신사께서 일어서서 나가시며
내게 말을 붙이셨다.
"효도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식사가 끝나 엄마의 손을 잡고 계산대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이미 음식값이 지불되어 있었다. 좀 전의 그분께서 우리 식탁의 것까지 계산을 하신 것이다.
부끄럽고 감사했다.
이런 완벽한 성탄 선물이라니!
#2. 낯선 크리스마스
동산제일교회를 떠나고서 처음 맞는 성탄절이다.
새로이 등록한 교회는 예전의 교회에 비해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마당의 크리스마트 트리며, 강대상의 장식, 성가대의 규모 등 축제스러움이 비교할 바가 못된다.
엄마와 제일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요한일서 4장과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 오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으며
그 어떤 믿음의 행위도 헛되게 만드는, 내 마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다만
작은 교회당 안에서 식구처럼 껴안고 울고 웃던 옛 교회의 교우들과
알토가 겨우 네 명, 소프라노가 겨우 대 여섯 명이었던 성가대 안에서 부르던 찬양들과
예배당에서 두 세 걸음만 걸어 나오면 있던 신발장 안의, 뒤꿈치만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아챘던
나래비 나래비 놓여있던 신발들과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지도 못한 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냉정하지도 못하면서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가 떠올랐다.
섬닷한 성탄절이다.
*섬닷하다: 식사 후에 포만감이 들지 않고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다.(Daum 사전)
#3. Home Alone
오늘 밤은 잠을 안 자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있다.
너무 좋다.
남편이 서울에 갔다.
정년퇴임하고 하루도 집을 안 떠나 있던 남편이 수술차 입원해 계신 어머님 병간호를 위해
서울에 갔다.
이유야 어쨌든 이 텅 빈 공간과 시간이 온새미로 나의 것이다.
잠자는 것도 아깝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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