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몇 안 되는 효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의 잃어버린 돈을 찾아드린 것이다.
10여 년 전, 그러니까 치매의 그림자가 찾아오기 전, 어느 날
전화기 넘어로 엄마는 돈을 잃어버렸다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울먹이셨다.
잘 찾아보라고, 그게 어디로 갔겠냐고 귀찮음을 간신히 감추며 대충 전화를 끊었지만
울음으로 목이 잠긴 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 차를 몰고 동산촌으로 급히 갔다.
마루의 벽에 몸을 기댄 엄마는 거의 실신상태였다.
애가 닳아 절망의 끝에서 물기가 밭은 수세미처럼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가방 두 세 개, 칸칸의 서랍, 화장품 바구니, 주방의 서랍, 심지어 냉장고까지 열어보며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내 눈에도 엄마가 잃어버린 30만 원이 든 하얀 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그만 찾자, 다 잊어버려. 헌금했다고 생각해. 병나겠어. 얼마 되지도 않는구먼. 내가 그 돈 줄게. "
"그게 무슨 돈인디. 안돼, 안돼. 우리 새끼들이 준 피 같은 돈, 아까워서 어쩐다냐, 미안혀서 어쪄 "
엄마의 깊은 상심은 잃어버린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의 의미 때문이었다.
잃어버린 돈을 찾다가 놀란 것은 엄마의 서랍 속에는 빈 봉투가 수북했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용돈을 담아서 드린 그 봉투마저도 차마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서랍 구석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계셨던 것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가마골 작은 땅뙤기 농사지어 여섯 남매 길러낸 엄마에게
고된 일하지 않고 펜대 굴리는 말단 공무원 자식들이라도 만들어 낸 자부심은
나머지의 삶을 살아내는 힘이 되었다.
입심 약해 자랑질에도 서툰 말 수 적은 우리 엄마, 그래도 틈 나면 살짝살짝 내 비치는 짧은 자랑에
간혹 내 얼굴은 화끈화끈 붉어지기도 했다.
'우리 큰 딸이 면장이여, 아들은 역장이고. 막내는 중핵교 선생이여, 영어선생...'
그날,
엄마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 돈을 다시 찾는 것 밖에는 없어보였다.
다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뒤지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고도, 놀랍게도 나는 엄마의 가방 안 속 주머니에서 30만 원이 든 하얀 봉투를 찾았다.
(그렇게도 여러 번 뒤져봤음에도 찾지 못했는데 미스터리일 뿐이다.)
나의 기쁨의 비명소리에 엄마는 비로소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게 환한 기쁨의 표정을 본 적이 없다.
엄마와 나 둘을 다 살려준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기억에 남는 가장 큰 효도 중의 하나다.
이제 엄마는 돈을 모른다.
동시에 나는 엄마께 용돈을 드리는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있다.
봉급날이면 하얀 봉투 겉면에 <사랑하는 나의 엄마께>라고 써서 용돈을 드리면
발그레하게 웃으시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여러번 고갯짓을 하시던 그 따스한 기쁨을
더 이상 나눠가질 수 없다.
예쁜 치매노인이 되신 엄마가 기껏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고는
두루마리 화장지나 고운 빛깔이 나는 타월 등이다.
주말 동안 우리 집에 와 계시다가 이제 당신의 집이 된 막내 오빠 집으로 모셔다 드릴라치면
둘둘 만 분홍색 타월을 손에 챙기고 계시거나 화장지를 야무지게 들고 계신다.
이제 엄마께 기껏 할 수 있는 효도래야 아무 값도 안 나가는, 그 욕심낸 물건을 잘 챙겨가게 하시는 것뿐이다.
살아계시지만,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다.
엄마께 용돈 봉투를 드리던 그 기쁨의 날들이 아리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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