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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페넬로페의 베짜기

 

 

'페넬로페의 베짜기'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나 하나도 발전이 없는 헛고생을 이르는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10년이 지속된 토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얻게 된 그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 이타케에 도착하는 데는 십여 년이 또 걸린다.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그의 정숙하고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가 하는 일은

밤마다 수의를 짓는 일.

오디세우스를 대신하여 그녀의 남편이 되기를 원하는 수많은 거친 남자들은

날마다 그녀의 집에 머물며 난동에 가까운 행패를 부리고 그들 중 새로운 배우자를 선택하라고 채근한다.

이에 페넬로페는 지금 짜고 있는 시아버지의 수의가 완성되는 날에 그리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낮동안 짰던 수의를 밤이 되면 다시 풀어버린다.

그녀의 베짜기란 시간을 연장시키는 일, 이외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2022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아예 폭설로 내려버린 오늘은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내리는 눈을 핑계 삼아 송창식의 <밤눈>도 다시 들어보고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시구가 들어있는 김광균의 <설야>도 떠올려보듯

생일날만큼 날을 핑계 삼아 자의식의 망또를 둘러써 보기에 적절한 날이 어디 있던가.

온갖 스위치가 다 켜진 번잡한 나무들 사이에서 벗어나 고요한 숲으로서의 나의 삶을 조망해 본다.

그러자 날마다 수의를 짜고 밤이 되면 다시 풀어버렸던 페넬로페가 떠올랐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양새와 직조의 패턴이 그녀의 베짜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 듦에는 성숙이라는 묘약이 사은품으로 따라오는 줄 알았던 건 젊은 시절의 나의 착각이었다.

풀고 짜기를 반복했던 페넬로페의 뻘짓은 오디세우스에게는 자신을 향한 정조를 지키기 위한

흐뭇하고 아름다운 일이기라도 했지만 나의 베짜기는 그.냥. 한심하고 답답한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그냥 이러다 죽을까 두렵다. 이제껏 달라진 게 없으니 이러다 어영부영 죽을 게 뻔하다.

여전히 모나고 거칠고, 여전히 좁고 얕은 채로.

 

오늘처럼 어쩌다 정신이 드는 날에는

닿고 싶은 아름다움의 높이와 그에 한 없이 미치치 못하는 키높이의 불일치로 멀미가 나기도 한다.

시어머님의 장례식에서 며느리인 내가 눈물이 하나도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내심 큰 공포처럼

더 늙은 다음에도 여전히 나 자신의 허름한 품격 앞에 뻑뻑한 눈으로 전전긍긍하는 할머니로 있을까 두렵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소설이나 영화들은 삶은 한 번 갔던 자리로 돌아가는 일로 채워져있다고들 말해준다. 

긴 생의 시간이 루틴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위로해 준다. 

대동소이하게도 우리들은 비슷한 미덕과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리고 비슷한 행위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조금 더 잘 살기를 소망한다고 얘기해 준다.

 

 

"아, 순례 씨 개명하셨구나. 개명한 이름이 뭐예요?"

조원장이 물었다.

"김순례."

순례 씨가 대답했다. 

"엥? 바꾼 이름이 김순례라고요?"

"응."

"원래 이름은?"

"김순례."

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 유은실, 《순례 주택》, 비룡소, 2022, 13쪽.-

 

 

소설 속 김순례 할머니의 개명이라는 커다란 변화는 타인은 알아챌 수 없는 자신만 아는 결단이지만

어떤 시도보다도 고요히 우렁차다.

밤 새 조용히 내려 수북히 쌓여 있는 밤눈처럼

자리에서 꼭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울적해 하지 않을 재치와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감각으로

나의 세상을 공들여 바라보며 누리고 싶다. 

그러다보면 가까스로 평안하게 늙어갈 수 있으리라, 너무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으면서.

그 어느날엔가는 그저 착한 여자, 선희(善姬)가 아니라

햇빛이 들이치는 곳,  sunny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정이 넘어갔다.

나의 생일도 끝났고 실질적으로 한 살 더 나이가 늘었다.

여전히 저급한 욕망과 찌질한 분노와 게으른 성찰로 그날이 그날이 되게 대충 살아갈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김순례지만 달라진 김순례 할머니처럼.

 

내년 2023년 나의 생일, 오늘 밤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밤에는 

진심으로 자기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창 밖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갯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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