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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지향과 지양

 

 

얼마 전 드디어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동안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격리되어 있었다.

남들 흔하게 걸릴 때 쉽게 봤던 코로나는 막상 걸려보니 만만한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편과 이틀을 간격으로 같이 확진되는 바람에 만사가 귀찮은 몸 상태에서

같은 공간에 갖혀있어야하는 일은

작은 방에 누워 천정의 사방연속무늬 벽지만을 종일 봐야 하는 듯한 지루함 외에도

세 끼 밥을 차려내야하는 실질적 수고로움이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

 

 

격리기간 동안 새벽 배송, 총알 배송을 통해 여러 가지 먹거리와 간식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가 가장 즐겨 먹었던 간식은 복숭아 통조림이다.

하나에 겨우 2천원 남짓하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냉장고 한 칸에 줄지어 채워놓고

시시때때로 냉면그릇에 부어 머리를 맞대고 먹곤 했다.

하루 세 번 한 주먹씩 먹는 독한 약으로 사포처럼 거칠어진 입안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과육과 그릇째 들이키는 진한 국물의 달콤함은

그 어떤 정선된 식단의 우아하고 근엄한 영영가보다 더 큰 위로이고 혀끝의 즐거움이었다.

 

 

복숭아 간스메,

달디단 합성 음료를 넥타라고 부르던 시절, 우리 엄마는 부엌칼로 가장자리를 빙 둘러 뚜껑을 따던 그것을

통조림이라는 말 대신 '간스메'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플 때면 동화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먹고 온 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이불을 둘러쓰고 취안을 하고 나면

머리맡에는 복숭아 간스메가 놓여있었다. 아픈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특식이었다.

 

 

더 이상 복숭아 간스메는 귀한 음식도, 좋은 음식도 아니다.

건강에 좋은 신선한 과일이 매대에 가득한 마트에서 통조림 코너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주부로서 뒷꼭지가 다소 따끔거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고질적인 경범죄 범죄자처럼 여전히 슬쩍슬쩍 복숭아 통조림을 카트에 싣곤 한다.

고급진 테이블 웨어에 엄선된 식재료의 정성 다한 한 끼의 식사의 품격을 지향하지만

눅신하게 지친 마음에 껍질을 까서 직접 붙여주는 대일밴드 같은  투박한 먹거리를 지양하고 싶지는 않다.  

 

 

느리고 목이 뻣뻣하여 환희와 위로에 이르기에는 머릿속에서 여러 화학작용과 수 계산이 필요한 

우아한 행복 못지않게 삼류의 즉물적인 위로들이 복병처럼 여기저기 매복되어 있는 조야한 삶의 낱낱이 좋다. 

 

 

며칠 전, 나의 카톡 대문에 뜬 가짜 생일 폭죽을 보고

어설프게 친한 친구 몇몇으로부터 한 두줄의 축하 문자가 왔다.

젊은 시절 같았으면 귀찮게 여겨졌을 그들의 감정과잉의 오지랖이 

소낙비 쏟아지는 날 처마 아래 오종종 같이 서서 비를 피하는 발걸음 같았다.

 

 

'가짜 생일을 축하해요, 진짜 생일에 만나요. 보고파요.'라는

옛 교회의 집사님의 문자를 읽으며

냉장고 안에 나래비 서 있는 황도간스메 하나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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