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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동산촌 일기

 

197*년 8월 *일

온 가족이 마당의 평상에 둘러앉아 팥칼국수를 먹었다.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사그라들 때쯤이면 하늘의 무수한 별무리는 더 선명해졌고

평상에 누워 잠이 든 나를 엄마가 안아서 안방 모기장 안으로 옮겨주었다.

엄마 가슴팍의 향긋한 땀냄새와 숨소리가 아늑하여, 깊이 잠든 척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197*년 6월 *일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던 아버지는 항상 바빴고 홍시 같은 술 냄새가 자주 났다.

나는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잘 하는 착한 막내였고

숫기 없는 아버지가 비척거리시며 당신의 수염을 내 얼굴에 문지르는 것이 그나마의 애정 표현이었던 것 같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소가 끄는 리어카에 시멘트 블록을 가득 싣고 우리 집 대문을 돌아나가던 아버지와 소가 빗길에 같이 넘어졌고 블록들이 우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신발이 벗겨진 채 빗속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버지를 보고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돈을 벌어서 우리 아버지께 많이 드리고 싶었다.

 

 

197*년 7월 *일

소소한 바느질을 하시는 엄마 옆에서 나는 방학 숙제로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었다.

무슨 말을 써야할 지 난감해하는 나에게 언니가 첫 문장을 불러주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 재봉틀로 우리 가족의 베갯잇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그 옆에서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고요.'

언니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그런 내용도 편지글의 내용이 될 수 있음을 알았고, 개학 후 선생님은 내 편지와 일기를 반 친구들에게 읽어주셨다. 

 

여름 마당엔 항상 꽃이 가득했다.

논으로 밭으로 동동거리며 똥개처럼 바쁜 엄마가 잊지 않고 가꿔놓은 여름꽃들이었다.

 

 

197*년 2월 *일

"됐냐?"

"아니, 쪼끔만 더 돌려봐."

"인제 잡히냐?"

 

우체국 옆 중고가전제품 가게에서 사 온 우리집 첫 티브이는 사온 지 며칠 안되어 고장이 났다.

하지만 윗모퉁이 굴뚝 옆에 세워 둔 안테나의 방향을 조금 만져주면 질질 끓던 화면이 때로 제대로 잡히기도 했었기에

나는 안방에서, 막내 오빠는 안테나 옆에서 서로 고함을 지르며 화면을 조종하곤 했다.

'우리 집 감기약 코코 시럽, 감기 조심하세요, 판피린 에스'로 시작되는 수사반장, 웃으면 복이 와요, 제3 교실...

옆으로 밀면 드르륵 말리며 열고 닫히던 우리 집 첫 티브이 금성 이코노는 

그 시절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 중의 하나였다.

 

 

197*년 7월 *일

서울의 고척동에 물난리가 나서 조찬성이라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라디오 뉴스를 스쳐들은 엄마는

반 정신이 나가서 그 길로 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셨다. 다행히 그 사람은 조찬성이 아니라 주찬성이었고

하늘색 대문을 밝은 얼굴로 들어오시는 엄마 얼굴을 볼 때까지 우리 형제들은 한 끼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찬성 오빠는 짙은 파란색 날개를 가진 신일선풍기를 소포로 보내기도 했고

츄리닝이 유행하던 시절, 막내 오빠와 나의 츄리닝을 한 벌씩 보내주기도 했다.

 

 

197*년 11월 *일

어느 겨울밤, 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손님들이 새로이 올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던 곡소리가 무서웠고 남의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멍석을 깐 마당에서 밤새워 화투를 치는 무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당 한 켠 수북이 쌓은 연탄 더미의 불꽃 옆에 서서, 이 겨울이 지나면 집 안 가득했던 회색빛 암울도

멈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풍수지탄이라는 사자성어를 처음 배웠을 때 그 밤이 떠올랐다.

 

 

198*년 1월 *일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철웅 형을 통해 전화로 알게 되었다.

마당을 쓸던 엄마는 빗자루를 팽개치고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199*년 10월 *일

뒷 뜰 대숲 옆 감나무에서 딴, 장정 주먹보다도 더 큰 수수감을 엄마는 스테인리스 대야에 가득 담아주셨다.

장독대 사이사이에 심은 꼬들빼기를 뽑아 실파를 섞어 만든 김치도 한 통 주셨다.

"감이랑 꼬들빼기 김치, 정서방 좋아하잖아."

 

18일마다 드리는 용돈의 봉투에는 '사랑하는 나의 엄마께.'를 꼭 써넣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연신 '고맙네, 고맙네.'를 빠뜨리지 않았는데 그게 마음이 아팠다. 여섯 남매 키우며 앞집으로 옆집으로 아침마다 돈 꾸러 담박질 하시던 그 부끄러움을 회복시켜드릴 수 있음이 너무 좋았다.

 

20**년 4월 *일 

"선아야, 너는 좋겄다. 너는 엄마 있어서 좋겄다."

한식날 즈음이 되면 엄마는 유난히, 엄마 세 살 때 돌아가신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하신다.

 

그날도 전화기 너머로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얼굴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무덤이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기처럼 엉엉 우셨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울며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네 엄마 해줄게. 나한테 하고 싶은 것 다 말해."

 

언젠가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이 온다면, 엄마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엄마의 엄마를 드디어 만나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슬픔 중에도 안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2021년 3월 1일 

엄마 구순 생신날이다.

조카들을 비롯한 온 가족이 동산촌 엄마 집에 모여 작은 잔치를 벌였다.

치매가 심해져 더 이상 혼자 사실 수 없어 막내 오빠가 모시기로 했기에 

어쩌면 동산촌 집에서 가지는 마지막 모임이 될지도 모르는 날이다.

 

남은 생애 내내 오랫동안 그리워할 우리 집.

하늘색 대문을 밀고 들어오면 넓은 마당의 가장자리 화단에는

해당화, 사철나무, 칸나, 샐비어, 작약, 장미, 백일홍, 봉숭아, 수선화, 붓꽃들이 철 따라 나래비 나래비 피어났지. 

화단의 끝에는 앵두나무가 한 그루, 그 아래 명자꽃, 분꽃, 그 옆에는 늙은 감나무.

뒷 모퉁이 담벼락에는 낫이며 호미 등의 농사짓는 도구들이 걸려있었지. 

그 아래 돌돌 말린 멍석이 쌓여있어서 숨바꼭질을 할 때면 마침맞은 은신처였고.

뒤 안을 돌아가면 바람결에 쓰윽쓰윽 댓잎 부딪히는 소리, 겨울밤의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던 대숲이 있고

그 아래 살구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

그리고 옹기종기 장독들. 장독대 가장자리엔 돌나물, 꼬들빼기 나물 가득했고 가장자리엔 가을마다 가을국화가 지천이었어. 

아래뜰엔 헛간을 비롯한 재래식 화장실, 그 옛날의 외양간.

토방을 올라서면 예전의 반질반질하던 넓은 마루, 그리고 몇 개의 방.

 

선하고 순한 어른으로 자란 우리 여섯 남매와

짧은 생애를 살다가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긴 세월 나의 아픔이고, 기쁨이었던 우리 엄마, 그렇게 아홉 식구가

댓돌 위의 신발들처럼 고물고물 살았던, 실리 313 동산촌 우리 집.

 

 

2021. 8

동산촌 우리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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