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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2021년 여름방학

#1. cloud 9

여름은 구름 맛집이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소리를 질러줬다.

"우와, 구름 좀 봐."

 

I'm on cloud 9.

무척 행복하다는 영어 표현에 왜 구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알 것 같다.

내 여름방학의 절반은 구름이었다.

 

 

 

#2. 아무리 기적이라지만,

영화를 소개하는 티비 프로에서 <더 테러 라이브>를 요약해주고 있었다.

왔다 갔다 집안일을 하며 건성으로 듣다가 순간, 나를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어? 쟤 김대명 아냐?, 어머 어머 맞네. 양석형 교수 목소리였네."

 

예전에 여러번 봤던 그 영화 속의 범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김대명 배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요즘 나의 최애 드라마 <슬의생> 덕분이다.

좋아하게 되면 확실히 더 많이 보인다.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일도, 만나는 일도 기적이다.

 

#3.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햄릿》, 《맥베스》, 《오델로》,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여름 방학에 읽은 책들이다. 

 

올 해 마지막 메이저 골프대회인 AIG 위민스 골프대회를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바닷가에 인접한 곳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열리고 있다.

출전 선수 중에 루이스 던컨이라는 이름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골퍼도 있다.

"어? 저 냥반 맥베스 손에 죽은 던컨 왕족의 후손인가 봐."

 

어쨌든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라는 맥베스의 독백이 차츰 진리라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어가니

책 읽는 일이 조금 힘들어진다. 모가지가 아프다.

 

#4. 째내다 클날 뻔!

독립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한 편을 보고 '초밥장이' 초밥집에서 명품초밥 한 접시를 혼밥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봐도 멋있고 매력 있고 우아했다.

왼손에는 방금 보고 나온 영화의 포스터를 들고 읽으며,

한 손으로는 초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최대한 품격 있게 간지 나게 먹었다. 

문제는 밥을 먹고 나올 때였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돌풍과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몰아쳐서 도저히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아줌마, 쫌 있다가요. 비 좀 멈추면 가시지. 다 젖어~'

초밥집에서 밥을 먹던 나를 옆에서 흘깃거리며 바라봤던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얇은 양산을 우산 삼아 우박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뛰었다. 마구 마구 뛰었다.

몰아치는 비에 양산은 쓰나 마나,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흠씬 젖어 다리에 마구 감겼지만 

머릿속에는 오로지 두 가지 걱정밖에 없었다.

 

우박에 행여 기스가 날 지 모르는 전주 주차장의, 내 상전이 되신 자동차님과

앞 뒤 창문 다 열어놓고 나온 우리 집의 베란다.

 

다행히 차는 무사한 것 같았고

(저녁에 차를 닦고 온 남편이 any problem?이라는 나의 질문에 no problem.이라고 대답했으니까.)

뒷 베란다로 들이친 비가 주방 바닥까지 흥건히 적셨지만

혼비백산 정신 나간 것에 비하며 댓'쓰 오케이였다.

째내다가 죽을 뻔한 하루였다.

 

《피닉스》  - ★★★★★ : 올여름 본 영화 중에서 영화 한 편 추천해달라고 하면 원 픽이 될 영화

《우리, 둘》 - ★★★ : 독립영화관 상영작스러운 영화

《어웨이》  -★★★★☆ : 집에 와서도 자꾸만 생각나는, 그리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생각의 여름》 - ★★★★ :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

-올 여름방학 movies that I enjoyed in 전주 독립영화관

 

#5. to be continued.

월요일이 개학이다.

단골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는 것으로 개학준비는 끝났다.

 

소풍처럼 살아야지.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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