첵파얀디(Chekpayandy)
체코로 망명한 남미의 인권운동가의 이름같은
첵파얀디는 내가 붙여준 나의 남편의 별명이다.
고등학교 영어선생인 나의 남편의
전형적인 삶의 포즈는
거실에 배깔고 엎드려서 예습을 하는 것이다.
책상도 마다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단어검색도 마다하고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해진 영한사전 옆에 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엎드려 영어책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서 때로 근천스럽기까지했다.
한번 쓱~ 보고 가서 가르치면 될 것 같은데
적어도 세 번 정도의 예습을 거쳐 완벽해진 후에야 출근하는 그 꼼꼼함에 질려서
그리고
걸핏하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책 봐야하는데(책빠얀디)'를 조금 비틀어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 바로 그것이다.
연말무렵,
남편이 신 학년부터 교감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참 기뻤다.
크고 작은 고난을 겪으며 단단해지며 또 내려놓는 훈련이 되어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풍부에도 처하고 비천에도 처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자못 담담한 척했지만
그 작은 높여주심에 뛸듯이 기뻤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더 이상 예습의 스트레스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급하게 이루어진 인사라서 겨울방학동안에는 교감의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보충수업을 했다.
지난 주 금요일 드디어 보충수업을 다 마치고,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이 영어사전 화형식하자~!!"
비사표 성냥 골마리에 몰래 숨기고 나가,
반월리 들판에서 쥐불놀이하던 어린 시절의 그날처럼
눈발 위에서 활활 타오를 영한사전을 생각하니 주체못할 쾌감이 푸르게 넘실거린다.
"수고했어, 나의 첵파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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