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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삶은 달걀(boiled egg)



이 세상에

달걀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반찬이 없을 때

달걀만큼 만만한 게 없다.


잘 익은 김치에

들기름 잘 바른 구운 김에

달걀 후라이면 한 겨울 혼자 먹는 밤참으로 그만이다.


삼겹살 집에서 한 순배쯤 술잔이 돌았을 즈음

단골에게만 준다는 돌솥이 넘쳐 흐를 정도의 풍성한 달걀탕은

그야말로 최고이다. 


달걀말이는 또 얼마나  때깔이 나는가

양파, 대파 송송 썰고,

냉장고 야채실에서 뒹그는 말라비틀어져가는 깻잎, 느타리 버섯 썰어넣고 

도톰하게 돌돌 말아 길쭉한 접시에 요염하게 줄 세워 뉘여 놓으면

극강의 비주얼로 그냥, 막 그냥 침이 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혁명적이리만치 신박한 달걀의 용도는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달걀 투척'이다.

패주고 싶은 얄미운 상대를 향해

군중을 뚫고 다가가 수모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달걀을 던질 것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원하는 거리만큼 던져지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안성마춤의 무게감,

가격되어진 상대의 얼굴에서 터져 흐르는 노란 액체가 주는 복수의 쾌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생채기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가해자를 향한 대중의 비난을 중화시키는 물질적 특성.

가히 혁명적인 수단 아닌가.








 

어제, 오늘

서너가지의 일이 동시에 꼬이고 있다.


#중고 커피머신을 사는 일에 일처리가 엄벙하여

천만원이 넘는 돈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마음 먹고 사서 친구에게 택배로 부친 선물의 행방이 묘연하다.

#새로 맡은 새 학년 새 반에 핵폭탄급 문제아가 들어왔다.



밤새 조금 뒤척였지만

아침 식탁에 샛노란 달걀 후라이를 먹으며

네 가지의 #이 모두 현실로 일어난다해도, 꼬인채로 끝난다해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봤자,

삶은 달걀(Life is an 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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