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매를 맞고>
복효근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당신은 목에 너무 힘을 준다는 것 알아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시인이라 이거지요?
마음이 한 움큼 뜯겨나가고
뉘우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뉘우치며 하루가 지나고
또 e-메일이 왔다
- 어젯밤 술에 취해 방배동에서 모 시인과 다퉜는데
돌아와 그 시인에게 e-메일을 보낸다는 게
잘 못 배달된 것 같네요. 죄송해서 어쩌지요?
평소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나도 답 메일을 이미 보낸 뒤였다
딸아이 피부약을 내 감기약인 줄 알고 먹고서
감기가 나은 적도 있다
대신 매맞고 뉘우친 마음의 자리 푸른 매 자국이 싱싱하다
손편지를 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폰문자나 카톡이라는 손쉬운 수단이 있다보니, 이메일조차도 귀할 정도다.
간혹, 손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편지지 위에 쓴 내용 이외에도
전달될 동안의 아침의 기온과, 석양의 두께와 낮동안의 햇빛의 냄새가 밴
그런 느린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답장이 없으면 어떠랴
2학기 마지막 시험, OMR카드 채점을 하다가
아이들이 남긴 흔적들을 보고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잊지말아달라는 말을 남긴 주혜의 답안지에
나도 모르게 답장을 썼다.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니?'
쓰고 나서 보니,
나의 댓글이 주혜가 읽을 일이 없는 나의 독백임이 생각났다.
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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