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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눈이 내린다.

 

 

<이웃집의 토토로>를 다운받아 봤다.

처음 봤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열 번 넘게 봤다고도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무렵,

누군가의 선물로 갖게 된 <토토로> 비디오 테잎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영이 안된 애니였다.

자막도 없는 그 비됴테잎을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도 얼마나 재밌게 보고, 보고 또 봤는지

요즘도 두 아들은 '토토로'에 대한 나름의 향수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재미난 것은

일본어라고는 후까시 이빠이 아까징끼 홋따이상 정도나 알던 실력으로도

그 애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몇 년 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이 되었지만,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볼 수고로움을 기울이지는 않았었다.

 

자막없이 보던 때와 이해의 차이라고는

연못에서 발견된 신발이  '메이'의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

옥수수에 써 놓은 글씨가 '엄마에게'였었다는 것 정도 뿐.

 

처음 내리는 눈이 아니어도

항상 첫눈같은 눈송이처럼, 따뜻한 설레임은 여전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하지만

덜 안다해도 더 아름답게 볼 수는 있다.

어차피, 흡수되는 것들은 느끼는 자의 감각의 필터링을 통과한다.

그래서 고유의, 독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당신은 나의 감각 속의 당신이다.

 

 

카버의 단편 <대성당>에서는

티비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맹인이 등장한다.

제대로 설명을 못하자 그는 주인공에게 같이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한다.

성당을 그리고 있는 주인공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그림을 따라가는 맹인.

나중에는 그에게까지 눈을 감고 그려보라는 제안까지 한다.

그리고 묻는다.

 

-"어때?"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내 삶도, 그 누구의 삶도 그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별로 없지만

내 감각의 거름망이 좀 더 덜 촘촘해져서,

그 넓어진 구멍 사이로 모다들, 숭숭 빠져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괜한 이유로 삶과 서먹서먹해질 필요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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