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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그날의 자전거




우와우와~

'토토로'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장면이 있었다.
이웃집 소년 칸타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었다.


이건 나의 나와바리 동산촌에서는
'가래로 타기'라고 불리우는 기술이었다.
초등학교 4, 5학년 즈음 처음 자전거를 배운 내게
그 당시의 우리집 짐자전거는 너무나도 크고 높아서
발이 닿지 않았다.
그리하여 땅딸한 초보자인 내게 오빠들은 인체공학적인
신기술을 가르쳐 줬는데 그게 바로 가래로 타기였다.
내가 탱자나무 울타리에 처박혀가며 배우던 라이딩 테크닉을
일본의 논길에서 칸타녀석이 보여주고 있었다.


 

 

 

 

 



가래로 탔건

안장 위에 겨우 올라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탔건

어찌 누군가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와, 눈이 부실일만 있었을까만

 

 

 

"꽉 잡아"

첫 사랑 복학생 형의 자전거 뒤에 처음 앉아 

허리춤에 손을 대었을 때의 그 날의 따뜻한 오후 햇살이나,

"우리, 친구 맞지?"

홍콩의 번화가를 뚫고 달리던 여명과 그 뒷자리의 장만옥의 건들거리던 두 발이나,

하늘로 날아올라가던 E.T.의 자전거나,

내게 자전거의 영상은 대체로 곱다.

 

 

 

하지만 

 

"손이 얼었네. 아나, 너도 하나 먹어라"

짐자전거를 끌고 좁은 논길을  

한 쪽 핸들에 막걸리 주전자를, 다른 한 쪽에는 찐 계란 두 개를 담은 봉다리를 걸고

허발나게 패달을 밟아 논에 도착하면,

덜컹덜컹 반은 새어버린 주전자의 막걸리를 건네 받아 마시던 아버지의 하얀 입김같던 따르릉 소리,

내겐 가장 깊고도 기쁜 자전거의 기억이다.

 

 

 

이제는 나보다 더 젊은 나이가 되어버린

그 날의 우리 아부지, 추도식이 내일 모레이다.

'사츠키'를 부르던 칸타처럼 나도 그 날의 짐자전거를 가래로 타고,

겨울 아침을 달려가면,

이제는 하얀 달걀대신, 막걸리를 따라 주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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