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질질 짜면서 책을 읽었다.
한 밤중, 마지막 장을 넘길 무렵에는
꺽꺽 목이 메이기까지 했다.
로비와 세실리아, 그리고 그 둘을 향한
브리오니의 평생의 속죄의 과정,
이언 맥큐언의 <속죄>는
오랫만에 빨려들어 읽어내려간 책이었다.
새벽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며,
나는 행복한가, 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비오는 금요일 오전이다.
날이 축축해지면 모든 게 자꾸 되.돌.아.간다.
아침에 겨우겨우 고데기로 펴놓은
지독한 곱슬머리는 습기로 다시 꼬불꼬불 오그라들고 ,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거라던 위로는
다시 궤변이 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란 원래 무거운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본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마음(심장)을 되찾게 된 하울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말했었다.
- 왜 이러지?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 마음은 원래 무거운거야
'음란소년'이라는 가수의 한 미니앨범 자켓이다.
앨범들의 제목도 참 쫀득쫀득하다.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거야'
'이리와 벌 받자,'
'그대에게선 설렘설렘의 열매가 열리나봐요'
'입으로 해줘요'
열흘 넘게 걸려 읽었던
이언 맥큐언의 두터운 책 한권에 뒤지지 않은
쫀득거림이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반쯤은 어느 지점에
되돌아가있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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