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가가 시작되었다고
마당에서 키우는 토종닭을 잡아주겠다고
오라고 했다.
58년 개띠 우리 언니는
남원의 작은 면소재지의 면장님이시다.
2년전 남원 지리산 자락 탐나는 동네에
천평 가까운 땅을 사서
꿈꾸던 전원주택을 지었다.
삶은 옥수수랑, 감자, 닭백숙을 먹고
마당에 이어진 밭 고랑고랑에 심어진
온갖 꽃들과 채소들을 구경한 후
언니와 동네 숲속을 산책했다.
그 옛날처럼 동요며 가곡들을 같이 화음을 넣어서 불렀다.
'언니가 있어?'
내가 '언니'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낯설어한다.
넷이나 되는 오빠들 사이, 유일한 나의 언니는
합리적이고, 야무지고, 강단있어서
'마바리'인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나 역시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나의 유년의 그림 속에는
해질녁이면 동네 어귀 신작로를 같이 걸으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
언니의 국어책을 꺼내
'소나기', '탈고 안 될 전설'같은 글들을 맛나게 읽었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내게 언니는 처음부터 철든 사람이었다,
'보는 사람없으면 몰래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정의했지만.
봄에 찍었다는 여행사진을 구경하며 나는 깜짝 놀랐다.
내다버리면 누구라도 다시 줏어서 용케 식솔을 찾아다줄만큼
우리는 닮아가고 있었다.
내내 혼자보기 아까웠다는 석양을
나눠보며, 처음으로 언니와 결의를 했다.
우리,
그만 철들기로,
철딱서니없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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