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이
노르웨이로 쳐들어가 정복하려고 싸우던 무렵의 일이었다.
어느 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산기슭을 건너는데 위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여봐요! 잠깐 기다려요. 하나 물어봅시다.”
어떤 남자가 커다란 바위에서 고꾸라지듯 내려왔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대체 뭘 알고 싶어서 저렇게 극성일까라고 생각했고
그는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이봐요, 노르웨이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그 남자는 나이 든 양치기였다.
그는 어느 나라가 곧 정복되리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이고 어디에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가 분명히 알았던 사실이라고는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뿐이었다.
“상황이 좋아졌어요. 영감님, 좋아졌어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다행이구먼.”
“담배 태우시겠어요?”
“제기랄! 내가 뭣하러 담배를 피워요?
난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노르웨이만 별일 없다면 그만이지.”
- 니코스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에서-
이번에는 지리산 자락 달궁계곡으로 갔다.
여름 휴가철마다 온 식솔이 모이는 친정모임이다.
일박이일 일정의 끝무렵, 아침에 단장을 하며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어디, 어떻게 생겼냐. 도대체 왜 그런다냐'
눈 주위가 팬더곰이 되어버린 나의 피부문제를
슬쩍 소문으로만 들었던 60이 넘은 큰오빠가 자세히 바라보려 다가왔다.
그러다 그순간, 그만 방바닥에 있던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를 못보고
오빠가 손바닥으로 눌러버렸다.
흐르는 물에 씻고, 소주에 담그고, 알로에 겔을 바르고...
손가락 두개가 벌겋게 부어오르다 물집이 생겼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안해서 다시 큰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 야야, 걱정도 말어, 나는 너만 괜찮으면 된다.
'너만 괜찮으면 돼'
너라는 세계를, 나라는 우주를 가득 안아주는 말.
안부 전화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데면데면 말 없는 촌로, 큰 오빠 입에서 나온 한 마디처럼
나도 누군가의 먼 발치에서
한 세계를 가득 안아주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너만
행복하면, 나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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