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합향기가 정말 진해요. 제가 심은 거에요.
시들기 전에 어서 와서 맡아보세요.
주차하고 지나가는 나의 손목을 잡고
처마밑 작은 화단 앞으로 끌고 가 내 코에 활짝 핀 백합을 들이민다.
아파트 상가 건강원 <감나무집 흑염소> 여주인은
유난히 내게 살갑다.
그 앞을 지나라치면 여지없이 말을 건다.
물방울 무늬 원피스가 이쁘네요.
여느 때보다 퇴근이 이른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알록달록한 웃음이 나온다.
우리집에서만 몰래 쓰는 건강원 여주인의 별명은 '영애언니'이다.
그리고 '영애'는 나의 남편의 첫 사랑 이름이다.
처음 상가에 입주한 건강원 여주인을 우연히 보고 들어 온 남편은
배시시 내게 말했었다. 영애를 아주 쪼끔 닮았다고.
남편과 같이 외출을 하다가 '영애언니'를 만났을 때
나는 포롱포롱한 웃음을 뒹굴리며 기어코 말을 걸었다.
" 있잖아요, 우리 남편 첫사랑이랑 닮으셨대요,~"
아무리 사랑한다고해도 아픔은 전이되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이 누워있어도 기쁨이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삶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그치지 않는 폭우 속에서 가끔 누군가의 처마 밑을 빌려 오종종
잠시 빗줄기를 피할 뿐이다.
그러다가 외부의 존재에 휘둘리지 않을 근력이 생기게 될 때 쯤이면
고것들이 내 작은 화단의 객원 꽃님들이 되는 것일게다.
주차장에서 홍균이가 내려오길 기다리다가
아파트 뜰 푸르른 감나무에 폰을 들이대는데, 17층 연세드신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찍으세요?
-아, 새끼감이 이뻐서 찍어보려는데 별로 안이쁘게 잡히네요.
-제가 찍어드릴까요? 키가 크잖아요.
-아, 아니에요.
알록달록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내가 그 아저씨 첫 사랑이랑 닮았을게다.
닮은 꼴이 많은 이 세상에
별 점 다섯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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