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는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의 크기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 나온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2,000 스타디온은 지금의 도량형으로 하면 2,200km라고 한다.
지금의 미국의 도시를 기준으로 할 때
만약 새 예루살렘을 미국 지도 위에 올려놓는다면:
- 남쪽 끝: 휴스턴 또는 마이애미
- 북쪽 끝: 시카고를 훨씬 넘어 미네소타 근처
- 서쪽 끝: LA
- 동쪽 끝: 덴버 또는 캔자스시티 인근
➡️ 미국 본토의 약 절반을 덮는 정사각형 도시가 되고,
높이로는
- 새 예루살렘의 높이: 약 2,200km
- 국제우주정거장(ISS) 궤도: 약 400km
- 에베레스트산: 약 9km
미국 대륙 절반 크기의 도시가 하늘을 향해 우주까지 솟아 있는 모습이 된다고 한다.
사실,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새예루살렘의 실제적 크기에 대한 계산 및 추론은
어떤 목회자도 오래 머무는 부분이 아니다.
일일이 계산하여 물리적 크기를 제시하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신학적 핵심 메시지는 숫자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도 밀려나지 않고 모두 거할 수 있다는 복음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접해 본 천국의 현실적인 숫자와 그 크기에 대한 묘사 앞에 갑자기 내 마음이 이상하게도 딱딱해졌다.
구체적 형태가 없었던 추상적인 천국은 내 마음에서 이상적인 이상향으로 유연하게 존재했었다.
모든 곳에 편재해 계신다지만 우리 하나님은 아마도 푸른 하늘, 뭉게구름 너머 어딘 가에 계시면서
내 마음 깊은 곳의 눈물의 얼룩도, 촌스럽지만 절박한 소망도 흘려듣지 않으시는
정확하고도 따뜻한 나의 아버지셨다.
그런데
만이천 스타디온이라는 구체적이고도 물리적인 천국의 사이즈 및 모형을 머리에 떠올리자
영화 《아일랜드》와 넷플리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떠올랐다.
거대한 크기의 밀폐된 공간에 모두 같은 의상을 입고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있는 대중들,
그리고 모두가 동시에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명령을 하달하는 절대자.
차갑고도 일사불란한 군대와도 같은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잠식했다.
어쩌지?
천국이 그런 곳이라면 진짜 별론데... 양보하고 싶은데...나 대신 니가 가면 안될까?...
절대자 하나님의 시야의 스펙트럼 안에서 그분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24시간,
그분에 대한 찬양으로 삶을 가득 채우는 사계절,
아픔이나 질병이나 죽음까지도 없이 하나님을 향한 애정표현으로 리미트리스 오토 리버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크리스천으로서의 나의 신앙관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복음 송가 가사처럼
잠잠히 내 삶을 보면 하나하나 이뤄가신 놀랍고 신비한 그분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나의 삶의 윤기를 회복시켜 준 것은 그분의 긍휼과 용서임을 확신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과 성실하심을 신뢰하기에
내 삶의 가장 좋은 선택은 바로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일요일과 수요일의 예배, 금요기도회, 또 목장의 모임 등 모든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첫 빈 시간은 기도와 묵상의 시간으로 사용하는 루틴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교회에서 화장실 청소를 자원하여 봉사하고 있으며 토요일에는 미용봉사를 위해 미용을 배우고 있다.
나의 모든 소유가 주로 말미암음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주마다 주일헌금과 감사헌금, 십일조 헌금도 기쁨으로 드리고 있다.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때깔 좋은 권사님이다.
하지만 내 취향이 깊이 반영되어 있었다.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고
내 취향대로 천국을 그리고 있었다.
'내 마음을 펼쳐 보이면 다독여주시고
기도로 포장된 욕망을 아뢰면 '전지전능함'을 발휘해 주시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여 내 삶을 간섭하시지는 않기를,
지상에서 내가 가까스로 만들어낸 인간적 아우라와 멋짐을 후진 것으로 취급해 주지 않기를,
당신은 저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너머에 보일 듯 말듯한 거리에 계시면서
내 삶에 지나치게 간섭은 하지 않으면서 내 소원은 들어주시기를,
내가 최선을 다해 경배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들어주셔야지...'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의 전모였다.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천국에 대한 사모함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철저히 신본주의다.
나는 인본주의의 선봉에 선 자였으니, 나는 사이비 크리스천이었다.
만이천 스타디온의 파장은 나의 기도의 첫머리에
한 문장을 삽입하게 되는 열매를 맺게 했으니
'주님,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래도 어쨌든
내가 갈 천국에서는
우리 하나님도 나처럼 하품도 하시고, 재채기도 하셨으면 좋겠다.
찬양이나 기도는 하루에 한 번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냉이도 캐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아수라발발타 포커도 하고, 나이스 샷! 골프도 쳤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나님을 더 살뜰히 더 재미나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
그래주실거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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