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 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이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일부)

손끝 발끝 모세혈관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가 통째로 뽑혀나간 것과 같다,
라는 소설 속 문장은 내가 아는 이별의 아픔에 대한 묘사 중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이별을 대하는 태도는 이전의 관계에 대한 성실과 상대에 대한 애착의 깊이를 보여주는 게 사실이어서
사랑한 이들에게 있어서 쿨한 이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속 금명이와 영범의 이별에서처럼 헤어지는 데 1년 여를 보내기도 한다.
매달리고 애원하다가 서로를 찌르고, 악 쓰고, 다시 만나고 결국은 헤어진다.
품격이고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감정이 너덜너덜해지는
그 밑바닥에 닿고서야 겨우 이별이라는 것에 이른다.
그렇다고 통증의 끝에 이른 것은 아니다.
얼마큼 아픈지를 상대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절의 상황 속에서의 고통은 그 후 오롯이 남겨진 자의 몫이다.
단절의 고통은 치유가 아니라 '견뎌내는 일'이기에
최고의 처방인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깊고도 검은 터널이다.
사라짐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듯이
이별만이 같이 있던 시간들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옆에 있을 때는 한 없이 흐릿하고 서툴렀던 사랑이라는 이름이
이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글썽글썽 또렷하고 정확해진다.
추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착이 빚은 일종의 정지 상태라는 것,
그 추억에서 이제는 내려와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마음에 이르러
'환해진 외로움인 홀로움'에 오롯이 서게 된다.
요즘 화사라는 가수의 <good good bye>라는 노래가 핫하다.
청룡영화제에 초대가수로 출연하여 박정민과의 로맨틱한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뜨겁게 재조명되고 있는 노래이다.
굿, 굿바이, 좋은 이별이라는 의미의 제목이다.
'널 생각한 운율이야
비로소 느껴지잖아
눈물을 고이고 찬란하게 빛나
우린 좋은 안녕 중이야
고맙단 말 대신 전할게
goodbye good goodbye
안녕은 우릴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 거야
나 땅을 치고 후회하도록 넌 크게 웃어줘
goodbye
좋은 이별(good goodbye)이 과연 있을까.
나의 만족의 수위를 채워주지 못하여 돌아서는 나에게
너의 욕망의 눈금에 도달하지 못하여 돌아서는 너에게
관계의 생명이 다한 우리에게
애써 달아 줄 꽃단추가 있을까.
아무리 에둘러 말해도 이별의 서사는 한 줄이다
"너는 더 이상 나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야."
그렇기에
고혹적인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며 부르는
안녕은 우릴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 거야,라는 가사는
이 상황에서 우아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줄 뿐이다.
나의 용서는 그저 너를 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이별은
단지 너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좋아해 주는 것 이상은 없다
"나도 너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내가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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