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례야, 한 숟갈 남겨놨다. 어여 일어나 먹고 자라."
엄마의 아버지, 즉 나의 외할아버지는 목수였다.
밤늦게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외할머니는 흰쌀밥이 고봉으로 담긴 스텐 밥그릇을 아랫목에 넣어두었다가
늦은 저녁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방 한 켠에 뉘엿뉘엿 잠이 들었다가
스텐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와 쌀밥의 고소한 냄새에 섞인 두 분의 낮은 두런거림에
슬며시 잠이 깬 엄마는 잠이 깬 척도 못하고, 잠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도 못한 채로
몰래 침만 꼴깍거리고 있었다.
"점례야, 어여 일어나."
외할머니의 눈흘김 속에서 얻어먹는
몇 숫가락 안 되는 그 밥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얻어 먹는 저녁참에 대한 기대로 잠을 깊이 들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새엄마와 배 다른 동생들 틈 바구니에서 항상 부족했을 섬닷한 보리밥의 끼니를 알고 계신
말 수 적은 아버지의 겨울밤의 낮은 부름을
엄마는 늙은 할머니가 되도록 오래도록 기억하시고 내게 말씀해 주셨다.
"아녀, 엄마. 나 바빠. 그냥 갈래."
"에이, 엄마랑 같이 먹고 가. 금방 차려 줄게."
엄마가 차려 준 마지막 끼니가 언제였을까, 를 생각해보면
이른 저녁밥을 같이 먹던 그날의 밥상이 떠오른다.
퇴근길에 들러서 반찬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고마움과 동시에 귀찮음이 느껴지곤 했던 게 사실이다.
자동차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로 보자기에 보따리 보따리 싸놓은 반찬을 들고 나오며
'엄마, 고마워. 잘 먹을게.'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여느 때처럼 반찬만 주섬주섬 싸들고 나오던 내게 그날 엄마는
'나랑'이 아니라 '엄마랑'이라는 잘 쓰지 않는 어휘를 쓰시며 다시 한번 권유를 하셨고
선심을 쓰듯 주방의 앉은뱅이 밥상에 푸짐하게 차려 놓은 밥상을 같이 나눴다.
"이렇게 엄마랑 먹고 강게 얼매나 좋아."
잔파를 듬뿍 썰어 넣은 돌게장이며 꼬들빼기를 섞어 담근 파김치,
청량고추를 썰어넣은 개운한 시래깃국 등
'엄마랑' 같이 먹은 그날의 저녁 한 끼가 아마도 엄마가 차려주신 마지막 한 끼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 서서히 엄마는 돌게장을 사러 삼례장에 가는 버스를 타는 가는 것을 어려워하셨고
파김치 담아놓은 것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하는 법을 잊어버리셨고
자신의 끼니를 거르셨는지 아닌지를 분간하지 못하셨다.
엄마와의 식사는 그 이후에도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랑' 먹고 가지 그려, 하시면서 내 소매를 붙잡으셔서 마지못해 다시 들어가
강낭콩을 섞은 흰쌀밥을 한 그릇 반이나 먹었던 그날의 한 끼가 가끔 떠오르곤 한다.
자신을 위해 몇 숟갈의 쌀밥을 일부러 남겨
잠을 깨우던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를 오래도록 기억한다던 엄마에게
나는 그날의 엄마의 밥상과 '엄마랑'이라고 붙여주신 다정한 말을
여전히 기억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출간한 두 권의 책 속에 엄마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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