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티브이 프로인 <나는 솔로>에는 극적인 재미를 위한 몇몇 장치들이 있다.
그중 가장 오묘한 것은 '2순위 선택'이라는 데이트 상대 선택법이다.
'나는 너도 좋아.'
6:6의 남녀가 데이트 파트너를 선택할 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원하는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2순위 선택은 마음 속 두 번째의 호감 상대를 선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마음은 복잡미묘하다.
여러 명의 선택을 받는 호사가 마냥 즐거울 수도 없고
다른 경우의 고독 정식과는 달리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해 쓸쓸히 짜장면을 먹게 된다고 해도 그리 불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이성과의 데이트가 모든 매력을 그러모아 발휘해야 하는 예각과도 같은 감정이라면
관심 밖의 이성과의 시간은 무심한 눈빛의 둔각과도 같은 시간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두번째로 좋아하는 상대와의 시간은 중심 잡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다리꼴과도 같다.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애면글면 할 필요도 없지만 여전히 설렘의 꽃가루는 묻어있다.
애매하고도 오묘한 선택이지만
그 어떤 데이트보다도 참가자 낱낱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한다.
가장 그 사람다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사랑, 특별히 이성과의 사랑의 감정이 가지는 큰 특징은 배타성이다.
타인의 출현을 간섭하고 배척함으로써 형성되는 배타적 독점관계만이 사랑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나는 너도 좋아.'는 사랑이 아니다. 열불 나는 일이다.
'너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나는 네가(너만) 좋아.'이다.
기울어진 곳에 사랑이 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안을까 봐/ 안길까 봐
했던 말을 또 했어/ 꿈쩍 않는 말발굽 소리/ 정확한 죽음은/ 불가능한 선물 같았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두 개의 혓바닥을 비벼가며/ 누구에게 잘못을 빌어야 하나”(장승리 ‘말’ 일부)
젊은 시절, 나는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었다.
부족한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특별하고 유일하기를 줄곧 원했었다.
돌아보건대,
이성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더러 멀어진 몇몇 관계들은 정확하지 못한 사랑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너도 좋아'라는 사이비 사랑을 참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의 태양계 한가운데 있는 태양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를 거기에 두려고 안달하면서 나는 특별하고
내 인생도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우긴다면 아마 절망 또는 망상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 새와 나무보다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해할 때
평화는 찾아온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글항아리, 36쪽, 2025-
환갑이라는 나이에 이르렀다.
어영부영 나이만 들었지 여전히 철없고 여전히 쉬이 흔들리고 부서진다.
다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별 볼 일 없고, 온전함과 거리가 한참이나 먼 나의 존재 방식을 보며
자 나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기대의 각진 모서리들이 조금씩 마모되어 감을 느낀다.
잃을 게 많이 남아있지 않은 자의 관용일까.
가능성이 없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일까.
'삶을 옥죄는 헛것들의 무게가 빠져나가는' 중늙은이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욕망과 기대 대신
아주 조금은 1순위의 집착에서 벗아날 수 있을 것도 같은 만용을 얻었다고 할까.
특별한 것이 될 수 없음을 감지하게 되었기에
나만의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일에 마음을 쓰고 싶다.
이길 수 없어서 이기려 하지 않게 될 때 세상의 모두가 승리자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낮아져 땅에 눈길을 주니 단순한 것들의 사랑스러움이 눈에 조금씩 조금씩 들어온다.
사랑의 보편성에 토라지지 않을 수 있는 편법의 기초에 입문한 것 같다.
그렇다면,
환갑, 특별함을 포기함으로써, 긴장의 힘을 뺌으로써
ㄱㅏ장 나다움이 발휘될 수 있는 나이이다. 축복의 시기이다.
"나는 너도 좋아."
그래? 옛다, 선심!
"나 역시 너도 좋기는 해."
(원 위치네. ㅋㅋ)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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