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쓰던 성경책의 글씨가 작아서 새것을 구입하려다가
엄마가 유품으로 남겨주신 성경책을 사용하기로 했다.
유품으로 남겨주셨다기보다는 돌아가신 후 형제들이 모여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할 때
내가 자원해서 가지고 싶다고 한 유일한 물건이
바로 엄마의 교회 가방이었기에 자동으로 유품이 된 것이다.
얼룩덜룩한 붉은 계통의 무늬가 있는 엄마의 교회 가방은 엄마의 냄새가 가장 많이 밴 물건이기도 하고
내가 교회를 모시고 다녔기에 가장 친근한 엄마의 분신으로 여겨진 까닭이었다.
두 칸으로 나뉘어진 가방의 앞 지퍼를 여니 엄마의 최애품이었던 이쑤시개가 서너 개 나왔다.
하나도 버릴 수가 없다.
하도 이쑤시개를 애용하셔서 다이소에서 작은 플라스틱통을 사서 이쁘게 넣어드렸는데
그 통도 그대로 있었다. 치매 이후에는 그 통 사용법도 잊으셨지만.
요즘 엄마의 성경책을 펼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보물찾기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치매로 근 십 년을 고생하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셨기에 엄마의 성경책의 쓰임새는
적어도 돌아가시기 7, 8년 전에서 멈췄다고 봐야할 것이다.
처음 펼쳤을 때 제일 맨저 발견된 것은 오래된 주보였다.
중식 당번 순서에 나의 이름도 있었고 기도 순서에 엄마의 이름도 있었다.
새로이 발굴된 유적지를 조사하는 고고학 생도가 세밀한 붓으로 정성껏 흔적들을 쓸고 쓰다듬듯
조심스레 또 뒤져보니 곱게 접힌 화장지 한쪽도 나왔고 천 원짜리 한 장도 나왔다.
그런데 찬송가 쪽을 넘겨보다보니 간간이 찬송가 제목 옆에 볼펜으로 그려진 브이표가 하나씩 나왔다.
이게 무슨 표시지?
표시된 찬송가들을 모아보니 엄마가 좋아해서 즐겨 부르던 찬송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종의 엄마의 즐겨찾기였던 것이다.
그것들은 나 역시 좋아하는 목록들이어서 가사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친숙한 것들이었다.
빨강머리 앤이 고아원의 자료보관실에서 엄마의 필체가 담긴 그림책을 발견하고 기뻐하였듯
나 역시 가슴 벅찬 연결감에 울컥 눈물이 나왔다.
엄마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엄마는 내가 이제껏 유일하게 교회로 인도한, 전도에 성공한 단 한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종가집에 시집와서 다달이 이어지는 끝없는 제사에
제수용 목기의 물기가 마를 날이 없는 날들이었다.
심한 담석증으로 간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두어 번 거치면서 마음이 약해지신 엄마는
'제삿밥 기다리는 모든 잡귀신들 다 물리치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결단을 내리셨다.
70살을 좀 넘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름도 없는 시할아버지의 셋째 각시의 제삿밥까지 정성껏 차리시던 그 바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목사님 생신 때마다 호주머니에 봉투를 쑤셔넣어 드리는 섬김을 비롯하여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는 열심을 보이셨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나 아브라함, 베드로 등등의 서양 이름의 낯선 정서가 엄마의 마음속 물결 속에서
이물감 없이, 영혼의 설사없이 잘 받아들여져서 윤슬처럼 평화롭게 반짝일 수 있기만을 소망했다.
예전 부처님 오신 날이면 하얀 한복을 정갈하게 입고 쌀 한 말머리에 이고 황방산 아래 서고사에 가서
슬하의 여섯 남매의 안녕을 비는 연등을 달고 오던 그 정성의 방향을 살짝 틀어 이름만 하나님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아침마다 조항신을 달래려 부엌 찬장 옆에 새로이 갈아놓던 정한수를 살짝 주파수만 바꾸어
헌금 바구니에 넣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시건방진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다.
혀에도 섬닷한 코쟁이 서양 신을 섬기는 노인네의 신앙이
막무가내의 '지성이면 감천' 수준을 얼마나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
'그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 창세 이전에 선택해 놓으셨다'는 구원의 원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기도의 바른 자세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날을 새워서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노인네의 가슴팍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친정을 방문할 때 가끔 목격했던 작은 탁자 위에 펼쳐진 성경책이나
새벽마다 이부자리에서 여섯 남매를 위한 기도를 위해 절대자 앞에 조아린 무릎 꿇은 작은 다리의 실루엣을 떠올릴 때면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우리 하나님도 질끈 눈을 감아주며
엄마의 두서없고 향방없는 믿음의 모습에 등을 토닥여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 정점례 권사에게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을 것 같다.
그게 바른 신앙이면 어떻고
지나친 기복주의 신앙이면 또 어쩌겠는가,
엄마는 엄마식으로 토종개같은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셨는데.
당사자끼리 합의을 봤다는데.
내 최고의 효도는 전도였는데.
엄마의 즐겨찾기 중 하나였던 찬송가를 흥얼거려 본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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