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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잘 가요, 엄마!

엄마!

어렸을 적 나는 내 둘째 발가락이 긴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엄지보다 둘째 발가락이 길면 엄마가 오래 산다고들 했거든.

금기가 미신과 얽혀있던 어린 시절,

문턱 위에 서면 엄마 죽는다고, 밤에 손톱 깎으면 엄마 죽는다고, 뭐 하면 엄마가 죽는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주의를 시켰지만

나는 그런 금기들을 얼마나 꼼꼼하게 지켰는지 몰라.

혹시 울 엄마 죽을까 봐.

그렇게 엄마는 온통 내 삶이었어. 내 삶은 온통 우리 엄마였어.

 

엄마,

그런데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버렸네.

엄마가 돌아가셔버렸네.

 

엄마 없는 세상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환갑이나 된 철없는 나는

세상이 텅 빈 것 같아.

더 재밌는 것이 하나도 없어.

행복한 일도 하나도 없다고.

 

항상 잡고 다니던 엄마 손의 감촉,

내 작은 품에 안기고도 남았던 작은 부피의 몸의 다정한 느낌,

선아야, 부르던 목소리,

첫눈을 밟듯 조용조용하던 발걸음, 그리고 엄마 냄새,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엄마 침에서 나던 입 냄새까지도 그립네.

 

세월이 이별의 아픔을 해결해 준다고, 회복시켜준다고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그리운 기억들마저 희미해질까 두려워.

 

엄마, 우리 엄마!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나이, 마흔다섯 살에 내가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우리 엄마가 살았던 외로움의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깨달았었지.

내가 마흔다섯 살이 된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던 거 기억하지?

아이고, 우리 엄마 너무 젊은 나이에 과부 됐네. 시집 가버리지 그랬어. 나 같으면 재혼했겠네. 왜 혼자 살았디야.’

 

엄마는 또 언젠가 내게 말했지.

나는 오래 살거여. 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는 오래 살거여.’

그 말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또 이런 말도 하셨어.

자신의 엄마를 너무 일찍 여의어서 엄마 없는 아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 새끼들에게는 그 슬픔을 안 주고 싶어서 어떻게든 오래 살고 싶었다고.

고마워,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엄마는 내 인생에 가장 값진 선물이었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막내로 태어나 오랫동안 엄마와 같이 지내며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남들은 나보고 효녀라고들 칭찬하지만, 천만에!

나는 우리 엄마를 흠뻑 누릴 수 있어서 혜택을 입은 거지.

 

엄마, 알지? 어디 나뿐이겠어.

우리 여섯 남매 모두는 항상 엄마를 정말 자랑스러워했어.

어디 여섯 남매만 그럴까, 손자들 모두, 교회 식구들 모두, 주변 사람들 모두,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했어. 우리 엄마에게는 그런 아우라가 있거든.

대학원까지 나온 나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우리 엄마의 재치와 지혜와 품격을 따라갈 수 없었어.

겨우 아들 둘 키우면서 수시로 인격의 바닥을 보이며 뒤집히곤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여섯 남매 키우시며 험한 말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으시며 항상 믿어주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셨던 엄마를 떠올리곤 해.

우리 가족들 어디 가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자존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엄마의 기품과 심지 덕분이야.

 

엄마, 우리 엄마 고마워!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너무 고마워!

우리 엄마 최고였어.

 

엄마도 우리 덕분에 행복했지?

 

술 때문에 속은 썩였어도 속정 깊은 큰아들 찬준이,

반듯하고 성실하여 항상 믿음직스러운 찬일이,

정 많은 떼보, 찬성이,

야무지고 든든한 딸, 정희,

자나 깨나 엄마 걱정했던, 막내아들, 찬영이,

그리고 안 나려다가 낳아서 종그래기같은 잘 써먹었다고 하신 막내 선아.

그리고 착한 며느리들, 손자들.

 

엄마, 엄마도 우리 덕분에 행복했지? 이 세상 그렇게 외롭진 않았지?

엄마, 우리 엄마!

지금쯤, 천국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겠지?

엄마보다 앞서 와 있는 큰 오빠를 보고 기함을 하셨을까?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엄마의 엄마를 만나서 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우셨을까?

 

하지만 엄마,

여전히 우리는 엄마가 그립네.

 

토요일 주간 보호센터에 마중을 가면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어?’ 갈 때마다 놀래시던 그 모습도 그립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열 번도 넘게 밥은 먹었어? 밥은 먹었어?’ 묻던 귀찮던 그 질문도 그립고

노래에 맞춰 헤이 헤이손 박자를 맞추던 모습도 그립고

맛난 음식에 맛나네, 참 달고 맛나네하시던 모습도 그립고

안 씻으려고 땡깡을 놓던 모습도 그립고

엄마의 꼬들빼기 김치, 그 누구도 흉내 못 낼 짭짤하고 맛나던 게장,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여자의 일생 구성지게 부르시던 노랫자락,

째깐한 몸집으로 노상 동동거리며 다닌다고 안쓰러워하며

나직이 부르던 선아야~!’하던 목소리,

치매에 걸려 정신이 없는 상황에도 잠자리에 들기 위해 엄마 곁으로 들어가면 잠결에도 이불을 당겨 덮어주던 그 손길도 그리워.

언젠가 얄팍한 내 마음이 엄마께 성질을 낸 후, 엄마 미안해, 사과하자

엄만데 뭐가 미안해, 엄마니까 괜찮아하던 그 밤도 아리게 그립네.

 

홍시, 삶은 강냉이, 찐 감자, 대수리, 찬송가 88…….

엄마가 좋아하시던 그것들을 보게 될 때마다

문득 견딜 수 없는 엄마 향한 그리움에 목이 메겠지.

길을 가다가 조그맣고 단아한 몸집의 어르신을 만나면

길을 다 가도록 뒤돌아보며 엄마를 그리워하겠지.

 

사람들에게 다음의 축복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

그놈의 치매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성질을 내고 화를 낸 적도 많았거든. 그러고서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에 나는 후회스러워 자주 울곤 했지. 그러면서도 다음 주에 오시면 진짜 잘 해야지.’ 다짐하곤 했어.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다는 게, 만회할 수 있는 다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하지만, 엄마, 이젠 다음이 없네. 다음 기회가 없어. 만회할 다음 주가 없어, 엄마!

 

그러니 엄마, 우리 엄마!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그대로, 그대로 다시 나의 엄마, 우리 엄마가 되어줘.

우리 이대로 엄마와 6남매로 만나요.

언젠가 엄마의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아니야, 지금처럼 다시 우리 엄마가 되어줘.

똑같이 우리 다시 만나요.

내가 더 잘 할게. 정말 잘 할게.

우리가 더 잘 할게.

 

그리고

잘못한 것들, 엄마 다 용서해 주시고, 꼭 용서해 주시고

우리 다시 만나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

 

엄마,

천국에 계시는 우리 엄마,

이 지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다는 천국이 마음에 드실까?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이 즐겁지 않듯 우리가 엄마 곁에 없는 천국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네.

 

하지만 그곳엔 치매도 없다하지? 질병도 없다하지?

010 8813 0644로 전화를 하면 그 옛날처럼

그 교양있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실까?

고맙네, 고맙네.’ 좋아하실까?

군인 휴가 나오듯 우리 엄마, 한 번씩 지상에 내려와 우리를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이곳의 모든 근심, 다 벗어던지고 하나님 품에서

평안히 안식하시길 바래.

그리고 우리들 하나씩 하나씩 천국으로 올라갈 때

빛나는 그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때 우리 얼싸안고 다시 만남의 기쁨을 누리게.

 

엄마, 우리 엄마!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천국의 확신 덕분에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엄마,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우리 엄마,

안녕히 가세요.

잘 가요, 우리 엄마.

 

엄마,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2023722

막내딸 선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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