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어깨 위에 앉아요.
춤을 추고 싶은 날이다.
dancing in the dark, just kiss me slow~
완벽한 그녀를 만났을 때의 에드 시런처럼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하느작하느작 맨발로 혼자 춤을 추었다.
느티나무 잎사귀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시월이고,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저녁이 찾아오는 가을이고,
무엇보다 머리를 아프게 했던 업무가 오늘 끝났다.
그렇다면 춤을 추어야지.
처음 팝송을 배워 따라부르던 그 시절처럼
서둘러 뒷 가사를 끌어오고 아는 부분만 목청을 높이며
내 마음의 금빛 출렁임에 흠뻑 젖어야지.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며 여느 때처럼,
'I'm home~!'
경쾌하게 소리를 지르며 들어서는데 백수 남편님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왠지 모를 우울에 가끔 시달리는 그는 오늘 심각하게 좋지 않아 운동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랬단 말이야?
그럼, 내 날개 위로 올라와라. 내 기쁨의 날개 위에 앉아봐.
자기는 가만 있기만 하면 돼.
같이 춤 추자.'
She shares my dreams,
I hope that someday I'll share her home~
나눠 갖는 것이 어디 꿈과 집뿐이랴,
가끔은 어깨도 나눠가질 일도 생긴다.
2. 케렌시아
아파트 상가에 꽃가게가 들어왔다.
단지 수가 적다 보니 상가의 영업이 시원치 않고 그러다 보니 업종이 자주 바뀐다.
작은 슈퍼에서 부동산 소개소로, 물품 보관 창고로 변경되며 한 동안 방치되어있던
가장 가장자리 상가에 꽃가게가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반갑다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몇 쪼간이나 가려고 이런 곳에 꽃가게라니...
아닌 게 아니라 들여놓은 몇 개의 화분만 닫힌 유리문 안에서 말라죽어갈 뿐,
도대체 문을 열어놓지를 않았다.
아, 화분들 힘들겠다.
닫힌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있었다.
꽃집, 케렌시아
주문제로 합니다.
필요하면 전화 주세요.
아닌 게 아니라 주말에만 열리는 문 안에서
글라디올라스 같은 젊은 여자가 꽃다발을 매만지고 있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이런 영업방식에
내가 숨이 막혀왔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평온해 보였다.
검색을 해봤다.
케렌시아:
투우장의 소는 극심한 흥분과 공포에 빠져 있다. 붉은 천을 향해 소는 미친 듯이 돌진한다. 뒷덜미엔 투우사가 내리꽂은 창이 그대로 매달려 있다. 탈진 직전까지 내달리던 소는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달려간다. 소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 케렌시아다. 스페인어 '케렌시아(Querencia)'는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을 뜻한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경기장의 특정 장소를 머릿속에 표시해두고 그곳을 케렌시아로 삼는다. 이곳에서 소는 숨을 고르며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에너지를 모은다.
투우장의 소에게 케렌시아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라면,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는 자신만이 아는 휴식 공간이 케렌시아다.
쉬워 보이진 않지만
글라디올라스 같은 그녀도,
유리문 안을 매일 들여다보는 지나가는 걱정 많은 주민들도
어딘가에 케렌시아를 마련해 두길,
잠깐,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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