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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뒤돌아봐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서 그녀를 지상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저승의 신 하데스를 설득한다.

하데스는 돌아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믿어지지 않아 도중에 돌아서서 아내를 보게 되고,

이에 아내는 저승으로 되돌아간다."

 

짧게 요약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의 내용이다.

 

오르페우스나 에우리디케 둘 중 하나는 쥐띠가 아닌가 싶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이곳 저곳에서 자주 그 커플을 만나니 말이다.

올 해 처음 본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올 첫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우연히도 그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특별히, 돌아봄, 오르페우스의 돌아봄에 대한 분석이랄까.

 

 

"소피(하녀) : 아내를 잃을까봐 겁났다는 건 이유가 안된다고 생각해요.

마리안느 : 선택을 했을 수도 있어, 그녀와의 추억을. 그래서 뒤돌아봤던거지.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것이야.

엘로이즈 :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속, 세 여자의 대화이다.

영화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마리안느 사이의 불꽃 같은 짧은 사랑을 다룬다. 

신화를 낭독하는 장면을 간간이 삽입함으로써 금지된 사랑 앞에 선 두 여인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로 동일시하고 있다.

신화 속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은 그들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수행규칙이었지만

오르페우스는 찰나적 열망을 견디지 못하고 어기고 만다.

영화 속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역시 비록 식어져 화석으로 굳어질 운명을 뻔히 예측하고도

뜨거운 용암의 흘러넘침의 욕망을 선택한다.

 

 

"... 오르페우스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사랑하는 연인을 제 손으로 한 번 더 죽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별의 순간에 연인은 나를 떠남으로써 내게서 한 번 죽는다.

그런데 더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에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 있다.

죽은 연인을 살리려는 노력이 외려 그를 한 번 더 죽이게 되는 경우다.

이 경우 떠난 것은 너이지만 네가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것은 내가 되고 만다.

이것은 너무 사랑한 자의 비극이다. 여기에 상실과 과실이 함께 있다.

반드시 이 둘이 함께 있어야만 회한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나는 회한이야말로 문학의 근본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사랑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운명에 의해서, 또 한 번은 나에 의해서.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죽여본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 "

-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75, 76 

 

 

<장바스티유 카미유 코로-저승에서 에우리디케를 이끌고 나오는 오르페우스>

 

 

 

작년 말에 한 번 읽고 너무 좋아 올 초에 공부하듯 다시 읽게 된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속의 여러 꼭지 중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오르페우스의 돌아봄을 너무 사랑한자의 비극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두 번 죽여 본 자 만이 그로 인한 상실과 과실이 만들어 낸 회한으로 말미암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 말라'는 금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에우리디케를 돌아보고 마는 오르페우스의 선택에 대한 설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혹은 엘로이즈의 말대로 

에우리디케 역시 '뒤돌아봐요.'라고 앞서가는 오르페우스를 불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 사랑하는 자들이 그 사랑의 댓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맞이한다해도 

사랑이란 어쩌면 '너무 사랑할 때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돌아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뒤돌아봐달라고 불러 세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장승리의 싯구 속의 한 줄처럼,

정확하게 하는 사랑만이 사랑이다.

 

그 외의 것은 순 '후라이 까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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