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소감에서 어떤 연예인은 마음 속 그 사람을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복효근 시인은 《꽃 아닌 것 없다》라는 시집의 서문에서
"혀짤배기 소리에도 귀를 빌려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란 표현으로 애독자를 묘사했고
"훗날 이 책의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따뜻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의 이름일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책의 책임편집자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신형철이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남자 주인공 커징텽은 학창시절 온통 그의 삶을 채웠던 션자이에게 세월이 흐른 후 이렇게 말한다.
"넌 영원히 내 눈 속의 사과야. 나도 널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너무'라니, 얼마나?"
"봄날의 곰만큼."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말을 건네지.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그래서 너와 새끼 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널 좋아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하루키는 미도리의 입을 빌려 '봄날의 곰'이라는 고유한 표현으로 '니가 너무 좋음'을 은유했다.
2019학년의 종업식이 하루 앞이다.
아직도 봉사활동 18시간을 채우지 않은 말썽쟁이 서너명에게 카톡을 보내다가 멈칫했다.
'네가 내 추운 겨울 속 유일한 봄이란다'
박석준이 카톡 상태 메세지이다.
이 놈, 이 똥구뇩같은 놈, 슈퍼울트라 캡숑 말썽쟁이 석준이, 이 새끼,
어쮸, 누굴 좋아하는구나.
지각에 조퇴에 결석에 흡연에 대책없는 지맘대로 석준이 마음에
봄이 자리하고 있구나...
나는 갑자기 석준이를 훨씬 더 쉽게 용서하고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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