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바로 내가 다루는 물질들의 왕이기에
나는 그 누구에게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몽테뉴는 말했다.
몽테뉴처럼 뻔뻔해지지 못하더라고 누구나 최소한 한 명씩은
자기 관객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감독이요,
출연자이며 관객임을 깨닫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말고 기뻐할 일이다.
세월은 흐르고 모였던 것들은 흩어지며 세워진 것들은 무너지고
아름답게 담아낸 모든 음식들의 마지막 흔적은 똥이다.
- 이상운 <신촌의 개들> 중에서-
이상운의 <신촌의 개들>을 읽었다.
'개들'을 '새들'이라고 연거퍼 잘못 읽었던 소설 속 다해씨처럼
나 역시 연세대 근처의 개새끼들이나 그 개새끼들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줄 알았으나
'신촌의 개들'은 한물 간 퇴역 카페의 이름이고
몰래 훔쳐서 숨쉬는 노예들처럼
1980년대를 신산한 걸음걸이로 통과했던 이들의 슬픔과 고뇌와 절망을 그린 소설이다.
아름다웠거나 혹은 형편없었거나
누추했거나 화려했거나
세상의 모든 것들의 끝의 흔적은 똥이라고 한 그의 표현이 말해주듯
대체로 인생은 정상참작조차 없이, 인정사정없이 허탈한 발길질로 끝나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주물럭거리는 나의 삶에 대해, 그 방식에 대해
타인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하니
비로소 운명에 대해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을 따 낸 듯한 쾌감이 들었다.
요즘 읽은 여타의 책들과의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필체에 홀려
그의 후속 작품을 살펴보았으나,
이럴수가, 불운의 교통사고로 이 소설이 출간된 그 해에 운명을 달리했다 한다.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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