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옴마집 우리 바둑이가 새끼를 낳았다.
그것도 세 마리씩이나.
'야, 아무래도 쟈가 새끼를 밴 것 같어'
몇 번 엄마가 얘기를 할 때마다 그럴리가 없다며 무시했는데
얼마전부터 도도록 부풀어오른 바둑이의 젖꼭지를 보며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평상시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던 배를 보며
늦가을에나 새끼를 낳으려나 했었다.
용하기도 하지,
항상 개줄에 묶여 토방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수줍 수줍 수줍둥이 바둑이,
언제 흑형하고 눈이 맞았었는지
흰둥이 한 마리와 검둥이 두 마리를 낳았다.
낳기 전날 쯤에는 토방 아래 놀랄만큼 큰 구덩이를 두 개나 파놓았다.
새끼를 낳아 키울 나름의 은신처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깔아준 수건의 끝을 자꾸 잡아당겨 새끼들을 덮어주기도 하고
기어나와 토방 아래로 떨어지려는 새끼를 물어서 다시 개집 안으로 들여놓기도 했다.
'이놈들아, 어찌 그리도 복도 없냐
자기 밥도 못 차려먹는 치매 걸린 할무니 집에서 태어나냐'
강아지 몸집으로 엄마가 되어버린 바둑이가 너무 안쓰러워
등뼈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 가져다주니 잘 안 먹어서
참치캔 서너 개 사다가 섞어줬더니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정신없는 우리 엄마는 개 집 안에다가 먹던 복숭아도 던져주고, 감자도 던져주고
사료에 물을 부어 불려서 주고(그 중 어떤 것도 안 먹었지만)
나름의 산후조리를 책임지고 계셨다.
어쨌든, 간만의 집안의 출산 경사에 엄마는 한껏 들떠 계시다.
여전히 강아지인 우리 바둑이는 모성본능을 있는대로 긁어모아 지 새끼를 돌보고
치매 걸린 울 옴마는 남아있는 자신의 기억으로 최선을 다해 그 바둑이를 살펴주고
나는 그런 울 옴마를 애기 돌보듯 살피느라 바쁘고...
또 각각의 존재는 생존을 돕는 기쁨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강아지들 ← 바둑이 ← 옴마 ← 나 ← 옴마 ← 바둑이 ← 강아지들
쉬이 바스라질듯, 누구 하나 기대어 의지할 만큼 똘방지지 못한 권속들이지만
아름다운 돌봄의 뫼비우스의 띠가 무지개처럼 떠 있는 초가을 동산촌의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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