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맵고 지려."
중 3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나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참외를 먹고 싶다는 소녀에게 대신 건넨 무우,
맵고 지리다는 소녀의 의외의 반응에 한 술 더 뜬 혐오의 몸짓으로 더 멀리 팽개쳐 버리는
소년의 갑작스런 도회지놈 코스프레가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인데도
그 어떤 감정의 누설보다도 내겐 '잔망스러운' 애정 표현으로 기억되어 있다.
즐겨 먹던 간식거리, 무우지만 니가 싫다면 나도 싫다고 말하고 싶다는 거다.
그것도 과한 몸짓을 곁들여서.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 신형철씨는
어떤 문학작품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곤 한단다.
그 표현이 진부한데다 별 뜻도 없어보이는 줄 알면서도 달리 설명 할 방법이 없다면서
결국 깊이 있는 작품이란
인간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어둠 속에 앉아본 작가가 쓰는 '인간 이해의 깊이'에 대한 얘기라고 덧붙였다.
깊이 있는 인간, 깊은 사람, 역시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끼는 사람을 이른다고 말했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 중에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라는 말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높고
시간이나 물질을 비롯한 자신의 것들을 그를 위해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감의 파생력에 대한 까막눈 우리 할머니의 깊은 혜안이 신형철 평론가와 막상막하 수준이었던 것 같다.
나의 가까운 지인 둘이 갈등을 겪고 있는 요즈음이다.
어른이지만 어른이기에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 등짝도 저리고 날갯죽지도 아프고 마음도 불편하다.
수평을 이루는 천칭의 저울처럼 그 누구 편에도 표나게 서 줄 수 없어서,
쏟아놓는 그 둘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며 어설픈 주억거림으로 고개만 끄덕거려 줄 뿐이다.
새도우 모션으로 밖에, 내 입에도 역시 맵고 지리다며 더 멀리 무우를 내 평개쳐 볼 뿐이다.
과도한 공감 능력으로 박쥐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 그림 파파야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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