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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ba the Greek

익산 가는 길

 

 

 

 

 

<익산 가는 길>

 

 

 

 

 

2절과 4절을 생략하고 부르는 추도식의 찬송가처럼

나는 너무 쉽게 어른이 되었고

오늘은 아버지의 제사를 익산 큰 오빠네로 옮기는 날,

'이리'라는 이름 밖에 기억 못할 그분을 위해

소상히 찾아가는 골목길

이미 나는 그분의 마지막 나이보다 늙었다

 

 

내게 남겨진 아버지의 온기란

막걸리 집의 삶은 풋콩 몇 줌이나

아직도 따끔거리는, 얼굴을 스친 수염자국

혹은

아무 곳에나 슬어놓는

그가 남긴 허기만큼의 그리움의 번식력

 

 

그래봤자

내가 한 사랑이래야 고작

소풍 전 날 급히 산 구두 같아서

아무리 정성껏 걸어도

뒤꿈치가 벗겨지거나, 구두가 벗겨지거나

어쩌면

급히 익은 홍시처럼 번번이 속주머니 속에서 묽게 터져 흐르곤 했지

 

 

신식 제사장 앞의 아버지는

생전과 다름없이 무기력하여

누이가 되어 나의 불온한 수식을 눈 감아 주는 일도

닫히지 않는 창문을 고쳐주는 일도 없이

 

 

다만

선아야, 선아야

취기어린 눈으로

선희로 바뀐 지도 모르는 내 이름을

두 세 번 부르시는 듯 했고

우리는 서둘러 허기를 채우러

우르르 장어 집으로 대낮부터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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