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사라고, 할아버지가 전구를 파는 가게인데요.
전구라고 해서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금만 전구들이거든요. 오무사에서 이런 전구를 사고 보면
반드시 한 개가 더 들어 있어요.
이십 개를 사면 이십 일개를, 사십 개를 사면 사십 일개,
오십 개를 사면 오십 일개, 백 개를 사면 백한 개, 하며 매번 살 때마다
한 개가 더 들어 있는 거예요.
- 잘못 세는 것은 아닐까요?
-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하나, 뿐이지만 반드시 하나 더, 가 반복되다 보니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느 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뻔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 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하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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