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가 아니라
하면 할게, 라는 사람이
무조건 착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
사랑은 독한가보다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내 위에 올라탄 네가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찰싹 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즉흥이다
그런대로 네게 뜻이 될 만큼은
내가 자랐다는 얘기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윗목 소쿠리에 놓여 있던
사과를 깎는다
받아먹는 너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진다
물러
무르면 지는 거라는데 말이지
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언젠가 자다 깼을 때
등에 베긴 그 물컹이
갓 낳은 새끼 강아지였다며
너는 이제 와 소용없는 일을
오늘의 근심처럼 말한다
쓸데없다.
김민정의 시, <비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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