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이주해와서 살 즈음에
그의 고향 체코는 소련의 침공을 당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거의 모든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그를 조국을 잃은 슬픔의 아우라로 둘러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 얼마나 힘들까, 고국이 핍박당하고 있다니,
그러니 '박해, 포로 수용소, 자유, 조국으로부터의 추방, 용기, 저항' 같은 거창한 말들만 왔다갔다했다.
그런데 쿤데라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런 거대담론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곳에서도 일상적인 삶은 분명 있으므로.
쿤데라는 그런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엄숙한 유령들의 키치'를 쫓아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청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에피소드를 말해주겠다고 했다.
체코의 망명지식인이 드디어 입을 연다니, 모두들 쿤데라의 말에 집중했다.
쿤데라는 그때 자기 집에 도청용 마이크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친구가 열쇠를 빌려다가 그 방에서 섹스를 했고
마이크를 통해서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갔다는 진짜 웃기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프랑스 지식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제겐 전혀 재미가 없군요"
이에 대해 쿤데라가 아주 적절한 표현을 했다.
'우리를 갈라놓았던 것은 두 가지 미학적 태도의 충돌이었다.
키치를 유난히 참지 못한 사람이 천박함을 유난히 참지 못하는 사람과 부딪혔던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책 <커튼>에 대해 써 놓은 어떤 책에서 편집한 글이다.
현실은 커튼 밖에 있다는 게 그의 글의 핵심이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커튼 앞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뒤를 보여줘야한다는 것,
커튼을 찢어내야한다는 것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happily ever after)'의 키치의 세계가 아니라
치통, 류마치즘이 만연한 일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다 드러내는 非키치의 세계.
멋진 건 멋지기만 하고, 웃긴 건 웃기기만 하는 것은 우리 삶에는 없으므로.
대체로
고요나 침묵이 훨씬 많은 걸 얘기해준다.
친구와 말을 많이 하다가 쓸데없는 말을 뱉어서
마음이 내내 뒤척인 하루였다.
산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삶 속에서
여전히, 시종일관 운문적이길 기대하는 내 모습은
참 키치적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천박하고 조잡한 세대 속에서
커튼을 찢어낸 후 드러나는 적나라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힘겨워질 때도 있다.
슈렉의 연인, 아름다운 공주가
갑자기 못 생긴 피오나 공주로 바뀌었을 때,
나도 어린아이들처럼 앙, 앙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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