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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잘가요, 엄마

 

 

 

 

- 무슨 대꾸가 그렇게 밋밋하냐?

- 글쎄요, 달리 할말이 없어서요.

   나를 키운 것은 뭐랄까, 분노와 술뿐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네요.

 

그 순간 누나는 정색을 하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분노와 술? 너 안색을 보니 무슨 뜻인지 대강은 알겠다만

   어린시절 기억이란 것이 마치 칼날과 같아서 혀를 베일 수도 있다.

   눈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늑대를 잡을 때,

   칼날에 짐승의 피를 묻힌 다음 그 칼을 짐승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거꾸로 세워 놓는단다.

   밤중에 늑대가 지나다가 피 묻은 칼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밤새도록 칼날을 핥다가

   나중에 제 피를 모두 소진하고 죽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럴싸한 얘기는 아니냐.

   너가 어린 나이에 집 나가서 겪은 고통과 상처를 아직까지 가슴 속에 넣고 다닌다면,

   너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넓이도 고통과 상처뿐인 게다.

   너가 가출해서 겪은 갖가지 우여곡절을 구구절절이 가슴 속에 넣고 다니게 되면, 늘어나는 것은 포원뿐이다.

   분노와 술뿐이었다는 말은 지금까지 누굴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구나.

   사랑할 줄 모른다면 출세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결기를 죽여라.

   너 관상을 보자니 나이 육십이 넘도록 그 무거운 것을 고스란히 가슴 속에 담고 있구나.

 

 

   그런 미련한 놈이 어디 있느냐.

   너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처럼 나이 먹게 되면 한 가지 좋은 것이 있는데, 부질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야.

 

   - <잘가요, 엄마>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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