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들은 헛점 투성이입니다.
그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입니다.
소설은 우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죠'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소설가 김영하씨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은 삶의 다양성과 개연성을 비쳐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인생 앞에서 쫄지않게 만들어준다. 널널하게 해준다.
하지만,
내게 독서는 쾌락이다. 마냥 즐거움이다.
책을 사러가는 길, 주문한 책이 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사랑하는 이에게 쓴 연애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과 비슷하다.
출간되기도 전에
출판사들이 미리 판권을 사느라 정신없는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시계>등등, 수 많은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있지만, 그의 에세이는 소설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난다.
바다표범의 키스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라는 표현처럼
사물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정말로 슬펐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겪으면서 여기저기 몸의 구조가 변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상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음악이 있었다, 라고 할까,
그때마다 그 장소에서 나는 뭔가 특별한 음악을 필요로 했다.
어느 때는 그것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이었고,
어느 때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또 어느 때는 고이즈미 교코의 카세트 테이프였다.
음악은 그때 어쩌다보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것 무심히 집어들어 보이지 않는 옷으로 몸에 걸쳤다.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 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218,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