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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진품으로 가득해요

 

 

 

- 그럼 원본은 없단 말이에요?

- 아니에요.

  세상은 원본으로 가득해요.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남자 주인공은

오랜 세월 원본이라 여겨져 왔으나

후세에 복제품이라고 판명된 예술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줄리엣 비노쉬에게 말한다.

복제품이라는 오명의 부당한 누명에 대해, 복제품이란 없는 거라고, 세상은 원본으로 가득하다고.

 

 

 

영화는 진품과 복제품,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새 책 츨판 강연차 이탈리아 투스카니에 온 소설가 제임스 밀러,

그의 책 이름은 <기막힌 복제품>이고, 부제는 '좋은 복제품 열 진품 안 부럽다'이다.

하루 동안 그를 안내하는 역할을 자원한 줄리엣 비노쉬는 골동품 가게를 하는 프랑스 여인이고

그녀의 가게는 진품 뿐만이 아니라 복제품으로 넘친다.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던 그 둘은

부부로 오인하는 카페 주인의 말대로 급기야 하루동안 부부 역할놀이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의 대화라는 게 고작 따지고, 불평하고, 해명하고, 싸우는 여느 부부의 트잡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서

오히려 그들이 예전부터 같이 살아왔던 진품의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이다.

 

- 동생 마리는 모조장신구를 더 좋아해요.

  잃어버려도 걱정없고, 덜 신경 쓰여서 좋대요.

- 모든 건 변하죠. 약속도 변하고.

   슬픈 게 아니고 현실이에요.

 

그 둘의 끝없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나 삶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호한 것이며

애시당초 구분되어질 수 없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상의 고운 꽃들은 그 경계에서 피어난다고 하지않는가.

 

 

 

영화를 보는 사이 사이, 교실에서 읽은 신경숙의 <리진>에서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을 사랑하게 된, 프랑스의 대사 콜랭이 그녀에게 처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조선 이름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본질로 존재하는 자신을 상대가 자신의 의지로 '일컬어 주는 것'

그것이면 기꺼이 넉넉하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당신의 섹스 환타지는 뭐야?'라고 묻는 남자에게 인아는 말했다.

"나의 섹스 환타지는 바로, 당신 덕훈씨야"

얼마나 환상적이고 섹시한 거짓말인가.

 

잠시 나를 매료시켰던 대화하기 좋을 것 같은 남자,

영화 속 제임스 밀러를 흉내내고 싶다.

 

'세상은 진품으로 가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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