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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swollen

 

 

모기에 물리면 가려울 뿐만 아니라 살갗이 붉게 부풀어 오른다.

모기는 흡혈을 할 때 혈액이 응고되지 않도록 주둥이를 통해 '하루딘'이란 성분을 주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피부가 붉게 변하고 부풀어 오르게 된다.

위험물질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백혈구가 '하루딘'을 없애는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우리 몸은 히스타민을 분비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가려움증을 느끼게 되고 피부는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인체의 여러 반응들이 그러하듯

모기에 물려 부풀어 오르는 증상 역시,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기제인 것이다.

모기가 좋아하는 피를 가진 내가 네이버에 검색해서 알아낸 귀한 지식이다.

 

우리 시어머님은 뻥쟁이시다.

신혼 초에는 그 뻥을 믿고 계획을 세웠다가 큰 코를 다친 적도 많고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시는 우리 송권사님, 거짓말을 그렇게 쉽게 하시면 안 되지, 하며 실망한 적도 많았다.

병원 로비나 집 주변 모정에서 만난 낯선 이를 상대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가족 브리핑에서

나의 남편은 항상 장로님(사실은 집사)이고, 나는 수석교사다.(웬 수석, 그 시절에는 수석교사라는 명칭도 없었음)

시아버님은 민전 서예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대상까지는 아님) 갓 입사한 손자의 연봉은 일억이다.(어림없음)

그러다 보니 우리 어머님과 대화를 할 때는 40% 정도는 깎아서 들어야 하는 기술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그런 모습이 귀여우시다. 

'아고~ 어머님, 진짜, 왜 그러신디야.'

'거운 기여.(It's almost close.), 야, 야 그게 그거지 뭐.'

젊은 시절 나를 화나게 했던 어머님의 뻥은

가시덤불과 거미줄이 눈을 찌르는 신산한 당신의 삶을 헤쳐 나가는 일종의 생존의 방도였다.

부잣집 막내딸로 자라다가 경상도에서 도망 온, 잘 생긴 병역기피자 청년과 눈이 맞아 집안에서 반대하는 혼사를 치른

우리 어머니가 잘 나가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면죄부를 얻기 위한 방도로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전략이 '과장'이었던 것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잠시 잠깐씩 금을 밟는 어머니의 반칙을 거짓말이라는 말로 낙인찍고 싶지는 않다.

모기에 물린 피부가 자신을 보호할 요량으로 백혈구의 역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부풀어 오르듯

삶의 공격에 대항하여 배에 도마를 찬 격인 우리 어머니의 뻥은 그래서 이제 내 눈에 귀여울 따름이다.

가끔 피곤하기는 하지만.

 

엊그제 동산촌 친정집이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후, 꿈을 천천히 다시 되돌려보기를 했다. 참 기분이 좋았다. 

뒤 뜰, 작은 마루에 앉아서 본 채소밭은 엄마가 심고 가꾼 채소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맨 앞에 옥수수가 수염을 늘어뜨리고 나래비 나래비 줄 지어 밭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뒤에 파릇하고 상긋한 상추가 두어줄, 그 옆에 고구마를 심어 놓은 이랑이 네다섯 줄,

그 옆에 감자밭의 감자 이파리가 진녹색을 띠며 풍성함을 더하고 있었다.

세모 모양의 가장자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완두콩이 여물어가며 연두색이 바래어가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높낮이가 다른 장독이 줄지어 있는 장독대 가장자리에는 빙 둘러 심긴 단 수수 나무가 굵기를 더해가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번식력 좋은 연두색 돌나물이 가득 덮여있었다.

꿈속에서도 이렇게 좋은 나의 고향집을 팔려고 내놓고 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형제 중에서 누군가가 이곳에 계속 살면서 뒤뜰의 채마밭도 지금처럼 잘 가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꿈 얘기를 했다.

"그렇게 가지가지 야채를 심을 만큼 뒤뜰이 넓던가?"

"어? 긍게이... 아,....그러네이."

 

생각해 보니,

장독대가 제법 컸고, 윗집 상철이네와 경계를 이루는 우리 대숲이 있었고

그 아래 두세 이랑 정도의 밭이랄 것도 없는 밭이 있는 게 고작인데

꿈속에서의 밭은 온갖 야채가 싱싱하게 자라는 제법 큰 채마밭이었던 것이다.

잠에서 깬 후 다시 더듬어 생각할 때조차도 그 규모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꿈속의 고향집의 풍경은 다소 과장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반가게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음반가게에서는 모든 시대의 모든 음반을 다 갖춰놓을 수 없기에 과거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 시절을 대표할 만한 대표음반만을 구비해 놓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 역시 좋은 것들만 머릿속에 남는다는 이야기이다.

 

나의 고향집에 대한 기억은 선별적인 좋은 기억뿐만이 아니라 사실보다 더 부풀려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비록 꿈속의 내용이었지만 그게 사실에 대한 완벽한 재현인 것으로 착각을 했다.

 

작년,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나의 고향집은 색이 바랜 엄마의 분홍색 슬리퍼만 깨진 콘크리트 토방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잡풀만 무성하여 흉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 형상을 확인하는 게 두려워 작년 이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소멸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아픈  마음을 감싸듯

나의 기억은 부풀어 올랐는지도 모른다. 양수가 태아를 감싸듯.

 

납작하고 평평한 진실보다

가끔은 부풀어 오른 거짓이 우리의 생존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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