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그릇에서 죽을 떠내듯
34년 동안 이루었던 교회를 떠났다.
굳이 이유를 따진다면, 관계의 생명이 다했다고나 할까.
청년 시절에 만나, 눈을 찌르는 뻐신 잔가지 수북한 길 없는 숲을 같이 헤쳐 나온 목사님께 등을 돌린 결정은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운다해도 교만이나 배신 이상의 것으로 이해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 식구들,
좋은 그들 속에서 좋은 사람인 척을 하다 보니 나도 그들처럼 겨우, 가까스로 좋은 사람이 되었다.
교회라는 특별한 공통체 속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한 그들의 선함의 영향력 아래에서
선한 척을 하다보니 어느새 진짜 선한 사람으로 다듬어지게 만든 나의 교회 가족들.
그들에게 우리의 선택은 한 없이 모진 것일 뿐이리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기대었던 그들 어깨의 낱낱의 온기가 그립다.
떠났지만 떠났다는 말을 스스로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진짜로 이별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염두에 둔 교회도 없다. 일요일 하루의 해가 참 길다.
내 마음에 깊이 물든 봉숭아 붉은 꽃물이 서서히 빠지듯,
두고 온 교회에 대한 미안함이 많이 옅어지고 엷어지는 그 어느날엔가는
새로 마음 붙일 교회를 찾아보리라.
죽그릇에서 죽을 떠내면 이내 감쪽같이 흔적이 사라지듯
떠나온 교회에 남겨진 상처도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아무 흔적없이 다시 건강하게 세워져 나가기를.
# 젠카 놀이처럼
나는 아직도 큰 오빠의 사진을 보지 못한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로 시작하는 <비 내리는 고모령>을 들어내기가 아직은 힘겹다.
길을 가다가 작은 키에 어깨가 구부정한 까무잡잡한 초로의 노인이 지나가면 한 번 더 뒤돌아본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따위의 진부한 설정이 얼마나 절절한 바람이 될 수 있는지,
그리운 사람들은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동화적 상상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큰 오빠가 천국에 가신 지 딱 일 년이 되었다.
그 여름이다.
올해 아흔 한 살의 엄마가 언젠가 천국에 가시면
엄마 몰래 먼저 그곳에 와 계신 큰 오빠를 보고 기함을 할 것이다.
쌓아놓은 나무토막 탑에서 살짝 한 토막을 빼내는 젠카 놀이처럼
간신히 모양을 세우고 있지만
큰 오빠의 부재는 쉬이 매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여섯 남매, 아니 다섯 남매
어느 누구도 그 비워진 구멍이 표 나지 않게 매워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빈칸 그대로,
We are six.
# 이름이 이름에게
찾아오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하루종일 눈이 시려요
슬픈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겠죠
달래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정남 쌤이 정년퇴임으로 학교를 떠나신다.
정남 쌤은 또 하나의 나의 이름이었다.
삶에 별을 섞는 작은 몸짓들의 기쁨과 가치를 같이 나누었던 시간들,
하찮고 사소한 일상에 푸른 종을 달아주었던 그 흔했던 날들,
그립고 그리워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외로워질 것 같다.
- 희수, 선희, 정남
잊고 싶지 않은 이별이 있고
잊혀질까 두려운 이별도 있지만
빨리 잊혀지고 싶은 이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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