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꽃이 한창이다.
소복하게 피어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낱낱의 한 알 한 알이 통통한 쌀알 같다해서
시골 할머니들은 쌀밥 나무라고도 한단다.
멀리서 보면 아카시아, 생강나무, 이팝나무의 꽃이 모두 흡사해 보이지만
알고 나면, 하얀색이라는 공통점 외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전주 시내 곳곳에 가로수로 심어진 이팝나무가 이제 그 풍성함을 피워내고 있어서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고른 공무원의 안목과 조경업자의 로비가 낭만스럽다.
이름과 생김새가 잘 어우러진 나무랄 데 없는 나무, 이팝나무이다.
내가 이팝과 헷갈린 것은 생강나무도 아카시아도 아닌 바로 조팝나무다.
단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인한 몇 번의 혼동을 거치고 나서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벚꽃과 피는 시기가 비슷한 조팝나무는 이팝에 비해 개화시기가 한 달 정도 이르다.
키가 작은 관목류여서 가로수보다는 키 낮은 울타리로 더 적절하다.
작고도 하얀 꽃잎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앙증맞은지 무릎 구부려 한참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어쩜 그렇게도 이쁘냐.'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꽃이다.
하지만 처음 조팝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꽃의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는 망측스러운 이름에 적잖이 실망했다.
조팝이 뭐람. 발음 조심했야겠네.
하지만 그것의 매력에 홀린 이후부터는 더 이상 그 이름이 마음속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름이 대수야, 꽃이 그렇게나 사랑스러운데!
단점처럼 보였던 그 독특한 이름이 오히려 매력의 요소가 되었다.
단단히 홀린 것이다. 조팝이 조팝을 넘어섰다.
본질이 외피를 압도할 때 외피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요즘 주말을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한 대사이다.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사랑의 기미도 안 보이는 한 남자, 손석구에게
마음이 향하게 된 한 여자, 김지원이 하는 말이다.
고백이지만 명령에 가까운 요구이다.
남녀 관계에서 생경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어휘, '추앙'은 그 말을 듣는 손석구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놀라운 것이어서 그처럼 나도 사전을 찾아보았다.
이제껏 만났던 개새끼들로 인해 그깟 사랑 따위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녀의 마음에
추앙이란 그 무엇도 걸림돌이나 핑계가 되지 못할 압도적인 본질을 가지는 사랑을 의미할 것이다.
로맨스가 해방으로 가는 탈출구가 되려면 누군가를 완벽히 받아들이는 맹목에 가까운 몰입이 필요하다.
계산 속 빠른 호모 사피엔스가 그게 쉽던가. 그러다 보니 개새끼가 시글시글할 수밖에 없지.
로맨스가 해방에 이르는 동력이 되지 못하기에
연애다운 연애도, 연애 아닌 해방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조팝이 조팝 이상이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A rose for Em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대 (0) | 2022.06.17 |
---|---|
해롭지 않은 사람 (0) | 2022.05.25 |
기억은 하얀 감꽃처럼 (0) | 2022.04.26 |
놓쳐 둔 단편소설같은 (0) | 2022.04.20 |
빨대가 필요해 (0) | 2022.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