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잎을 사다가 나물을 무쳤다.
노지 머위라고 쓰여 있어서 눈이 번쩍 뜨여 두 봉다리를 샀다.
물이 끓는 사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꽁다리를 찝어 껍질을 벗긴다.
손톱 밑이 까매지고 손가락 끝이 검게 물이 드는 번잡한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이 되었다.
흑임자와 참깨를 반반 넣어 짰다고 큰 올케언니가 가족모임 때 신문지에 둘둘 말아 몰래 건네 준
참기름을 넣고, 깨소금 듬뿍, 고추장과 된장의 비율을 2:3으로 하여 조물조물 무친다.
작은 단지의 뚜껑을 뒤집어 접시 삼아 수북이 담아내면 봄의 풍미가 밥상 가득 느껴진다.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은 십장의 손 익은 연장처럼 머위잎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주는 낫낫함은
내게 이유없는 든든함과 위로를 준다.
마치 나만 아는 의식을 치르듯 두세 번의 머위나물을 무쳐 먹고 나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보낸 느낌이 든다.
동산촌 고향집 뒤안 장독대 뒤에는 대숲이 있다.
밤이면 동네 참새들이 다 모여들어 종긋종긋 고개를 포개고 밤을 보냈고
선잠에서 깬 참새 한 마리 방정이라도 떨라치면
대숲이 몽땅 흔들릴 정도로 수런스럽기도했다.
대숲 바로 아래에는 봄이면
보름께를 두고 차례로 꽃을 피워대는 살구나무와 앵두나무가 있었고
아버지가 해마다 부어준 거름 덕분에 무성한 잎이 빤닥거리는 수수 감나무도 있었다.
감나무 아래 도도록한 둔덕 주변에는
기름지고 축축한 땅심 덕분으로 철 따라 갖가지 푸성귀들이 무성했다.
늦봄부터 가을이 되도록 장독대 주변을 온통 뒤덮었던 돌나물이며
초여름 잠깐 동안만 연한 순을 빌려주던 취나물,
나물로 그만이던 연한 잎사귀가 쇠고 꽃이 피어버리고 나면
길게 잎자루를 끊어서 들깨탕을 끓여먹던 머위나물까지
밥 불을 지펴놓고 부엌칼만 들고 뒤꼍으로 가면
아홉 식구 맛난 반찬을 후다닥 챙겨낼 수 있었던 작은 텃밭이었다.
이제 고향집에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다.
함지박 가득 나물을 무쳐내던 엄마는 아홉식구 밥 해 먹이던 그 오랜 습관을 잊어버렸고
머위 잎은커녕 꽃과 잡초조차 구분하지 못한 지 오래다.
고요한 빈 집의 앞뜰에는 조금 있으면 보아줄 이 없는 해당화와 작약이 한창일 것이고
꽃 진자리에 앵두 열매 조금씩 살이 오를 것이다.
뒤 안 대숲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자리에는 머위 잎 그 푸른 잎이 쇠어가고 있겠다.
세월은 흐르고
기억은 하얀 감꽃처럼 두근두근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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