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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짐짓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강남순 교수는

첫 수업 시간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무엇을 보았나요?"

 

질문의 의도를 이해 못한 학생들을 향해 동일한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강남순은 대답했다.

"인간을 보았습니다."

 

정답이야 뭐 질문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만 무척 정답스럽다.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사람답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보고 싶은대로 보고, 마음속 기준대로 판단한다.

봐야 할 것을 못 보기도 하고 쪽집게로 골라 보기도 한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풍의 빨강색 저지를 입고 찍은 사진이다.

내가 내게 반하도록 잘 나와서 프사에 오래도록 걸어놓고 있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앱의 공로로 말미암은 사기컷이다.

짐짓 젊고 이쁜 척이라니.

 

'짐짓 :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일부러 그렇게'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 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들이라고 소설가 김연수 님은

《소설가의 일》에서 말했다.

캐릭터가 자기 속마음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어느 정도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 된다는 얘기이다.

 

욕망을 가리기 위해 하는 몸짓이 소설적 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대체로 그런 행동을 내숭이나 위선이라고도 말한다.

 

제대로, 내가 나로서 잠잠히 사유하며 살. 아. 보. 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

멈추어 숨을 고르는 쉼표도

젠 걸음을 느린 산책으로 바꾸는 데크레센도도 없는 악보 같다.

이러다가는 어쩌면 삶이 기승전결의 정돈도 없이

미봉책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국장병에게 쓴 위문편지처럼 온기도, 여운도 없는 관계들도 더러 있었고

'마음'이라는 꽃 단추를 달아주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꽃잎을 따내어 버린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선입견을 모두 털어낸 눈빛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일'도

사랑이라고 말해 준 마음을 '사랑으로 누려보는 일'도 수월하지가 않았음은

하릴없이 분주하기만 한 내 마음 탓이었던 것 같다.

 

내 삶의 소롯길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형편없는 위선자가 아닌

소설 속 입체적인 인물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짐짓, 나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음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피고 지는 마음을 알아요 다시 돌아온 계절도
난 한 동안 새 활짝 피었다 질래 또 한 번 영원히 그럼에도 내 사랑은
또 같은 꿈을 꾸고 그럼에도 꾸던 꿈을 난 또 미루진 않을 거야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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