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가끔 [ ]척 한다.'
학급 아이들을 상대로 빈 칸 넣기를 해보았다.
행복한 척, 어른이 된 척, 괜찮은 척, 공부를 안하는 척, 남자다운 척...
그 외에도 엄지 척, 새로운 섬을 찾아 개척 따위의 예상 밖의 기발한 대답도 나왔다.
유재석, 조세호가 나오는 <유퀴즈 온더 블럭>이라는 티비 프로에서 본 적 있는 질문이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괜찮은 척'이었다.
알지 못하는 타인들의 대답에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괜찮지 않은 삶을 살아내느라 미소의 가면이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가보다, 하여 위로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가요?'
1에서 10점까지에서 점수를 말해주세요.
수천 개의 답을 수집했고,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가 있다고 한다.
7점.
거의 모든 사람들이 7점을 적었다고 한다.
최고의 좋은 상황에 있을 때도
그리고 보통의 일상에 대해서도
심지어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조차도
점수는 잠시 위 아래로 출렁거리다가도 다시 7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만점을 주는 일에 망설이는 이유야, 뭐 더 높은 지점을 바라보는 심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비극적이고 불행한 상황에서조차도 결국 7점의 점수를 준다는 조사결과에는 가슴이 저릿했다.
입 밖으로 발설해버리면,
불행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면,
확고한 사실이 되어 그 사실 안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될까봐
[괜찮은]척하는 안간힘이 거의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듯하다.
10월이 시작되었다.
시월부터는 에필로그의 느낌이다.
급히 넘기는 책장의 부록이랄까. 생의 짧음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씁쓸하게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의 앤이 말한 것처럼
시월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참 좋다.
종일 비가 내리는 시월이라니.
그렇다면
오늘은 십점 만점에 옛다, 9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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