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열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달렸다.
나는 머리를 할아버지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말도 하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버스는 도중에 두세 번 정류소에서 멈췄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그냥 버스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뒷덜미를 잡아챌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내가 버스에서 내린 것은 아직 날이 어두운 이른 새벽이었다.
추운 날씨여서 길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차바퀴 자국이 난 길로 접어들었을 때 산들을 바라보았다.
산들은 주위의 어둠보다 더 어둡고 더 큰 몸집을 하고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산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싶었다.
바퀴자국이 난 길이 끝나고 골짜기길로 들어섰을 때, 어둠은 서서히 회색으로 엷어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불쑥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나무야, 왜 그러니?"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두를 벗어버렸다.
"산길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할아버지."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308쪽-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열게 될 독서골든벨의 문제 출제를 의뢰 받아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정독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산속을 떠나 강제로 기숙사에 들어가 있던
작은 나무가 결국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산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산길을 걸어올라가는
작은 나무의 행복이 나의 목젖까지도 가득 차 올랐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은 동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부잣집 소녀 클라라를 따라 산을 떠나 도회지로 갔던 하이디는 할아버지와 피터의 눈 먼 할머니, 딱딱한 빵이 있는
산 속의 생활이 그리워 급기야 향수병이 심해져 몽유병에 걸린다.
하이디가 산으로 돌아오던 날, 하이디는 작은 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맨발로 알프스 산 속, 계곡을 달려다녔었다.
오늘은 이걸로 해야겠다.
요즘의 독서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말이다.
* 그림 설명도
퇴근 후 엄마집을 갔다가 저녁 7시쯤 나온다.
내 차가 한 대 겨우 들어가는 골목길(⓵ )을 지나, 큰 길(⓷ )로 빠져나가야 쉽다.
근데 잘 주무시라고 안아드리고 나와 운전을 하고 골목길 코너를 돌아 빠져 나오다보면
울 옴마는 여지없이 파자마 바람으로 작은 골목길로 나와서 내게 잘 가라고 마구마구 손을 흔들고 계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옴마가 허탕치고 허망해 하실까봐 요즘은 작은 도로로 빠져나온다.(⓶)
나도 잠시 운전을 멈추고 울 옴마에게 마구마구 손을 흔들다.
"옴마, 빤스 바람으로 돌아다닌다고 넘들이 숭봐, 언능 들어가~!!"
옴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슴하게 떠올릴 한 장면이 될 것 같다.
작은 나무나 하이디처럼 비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니지만
내겐 즐거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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