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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ba the Greek

마른 꽃

 

 

 

 

 

 

 

<마른 꽃>

 

                                                조선희

 

 

풋고추 잎사귀 한 봉다리 사왔다

된장에 고추장 섞어 참기름 조물조물하면

점심 반찬으로 맛나겠다

'줄기가 아직 연하네

꽃잎만 대충 솎아내면 되겄다'

구순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 신문지 깔고 거드신다

다듬어갈수록 한쪽에 수북히 쌓이는

늙어 시든 하얀 고추꽃잎

 

 

 

한 달짜리 해외연수 떠나 맞은 첫 저녁,

'우리 막내, 언제 오냐'

태평양 건너 노모의 울음 섞인 소리에 그만

병이 난 불면의 게스트에게

수전할머니는 감자스프를 끓여주었다

싹난 감자 모서리 툭툭 쳐내며

잘라내야 먹을 수 있다는, 덜어내야 산다는

그녀의 영국식 발음 속에서

살다, live와 떠나다, leave의 구분은 모호하기만 했다

 

 

 

대친 푸른 잎은 절반도 못되게 줄었고

별처럼 총총했던 끼니, 육남매 밥상을 차려내던

그 습관을 기억해내지 못한 채

엄마는 점심상 앞에 조그맣게 앉아 있다

솎아낼 수 없는 꽃잎되어 하얗게 앉아 있다

 

2017.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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