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나는
여러 해 동안 수요일 밤마다 크리스 할머니 집에서 포커를 했다.
크리스 할머니는 70대 노인으로,
페이즐리 숄과 술 달린 베개, 낡은 동물 박제들로 둘러싸인 방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스스로 게이임을 깨닫고 있는 중이었지만
가족에게는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크리스 할머니에게 내가 게이인 것 같다고 말하자,
할머니의 흐릿한 파란 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 얘야.
내가 네 나이라면 나도 한번 그래보고 싶구나."
크리스 할머니는 나를 껴안거나 위로하지 않았다.
내가 바랐던 대로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사소한 일로 여겼을 뿐이다.
나는 크리스 할머니에게 내가 데이트하고 있던 남자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아주 괜찮은 남자구나."
그런 뒤에 우리는 곧 도착할 다른 포커 플레이어들에게 줄 음식을 식탁에 나르기 시작했다.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154쪽 -
"얘야, 나도 한번 그래보고 싶구나"라고 말하고는
식탁에 음식을 나르던
그런 크리스 할머니같은 양반이 되어야지,
하지만
아직은
나도 가끔 그런 말을, 그런 무심한 위로를
듣.고. 싶.다.
껴안거나 위로해 주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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