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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꼰님이

 

 

 

들판에 있는 절, 실상사를 갔다.

 

 

뉘엿뉘엿, 구석구석 뒤적거려보다가

청동부처에게 손바닥이 발발 떨리도록 절을 해대는

흙장화를 신은 촌부에게

'What do you pray for?'

진심, 물어보고 싶어, 진짜로 다가갔다가,

'백장암이 어디있어요?'로 대체했다. 목소리도 가장 도회적으로, 째내서 ;)

그래도 진심 궁금했다.

하, 떨리는 손바닥 위에 뭘, 어떤 소망을 올려놨을까...

 

  

해가 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할 것 같아서 내비에 '쌍계사'를 쳤다.

낯선 곳으로 끌고 갔다.

지리산의 깊은 계곡, 달궁으로 끌고 갔다.

해발 1000m를 넘어간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니 년까지 순한 나를 간 보냣?'

혼자 지랄해 봤다. 모를 때는 잔 말말고 따라가는 게 정답.

 

 

 

알지도 못하는 산 길을 악셀을 밟아대며 따라가다가,

오늘 할 일은 반드시 내일로 미뤄야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렸을 적 내 별명을 생각했다.

 

 

 

꽃님이인 줄 알았던 내 별명은

알고보니, '꼰님이'였다.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꼰님이 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일세.

양 볼의 광대뼈가 툭툭 불궈진,

개.복.숭.아.꽃.이 되는 것일세.

 

 

학교 화단의 사과꽃을 보면서 참 한심했다.

이름도 새초롬히 'ㅅ ㅏ ㄱ ㅗ ㅏ'

입술과 잇몸이 부딪치며 내는 자음과 모음의 교미는

이쁠 뿐이요, 흥분은 없었다. 괴성도 있을리 없.다.

게다가, 열매도 이쁘고, 맛까지 사각거리니,

결핍이 없는 삶이란

맹맛~!!

 

 

이름도 상스럽고, 열매는 식용 불가하고,

쓸모라고는, 오로지 환장할정도의 잠시잠깐의 화려한 빛깔의 꽃.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엔

'개'라는 접두어가 붙는다.

개복숭아, 개살구, 개새끼, 개년.

 

 

꼰님이인 나는

네게 개복숭아였을게다.

 

 

 

이름도 요사스런, 달궁계곡

초여름의 숲은 지나치게 외설적이어서

한 십년만 젊다면

차를 한 켠에 세우고

그 숲에서 히스클리프같은 간지나는 악마를 만나

그 숲의 사생아를 배고 싶었다.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는 애새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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