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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아무도 없는 집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안방 앞 베란다의 천정빨랫줄 마른빨래들을

모조리 한 쪽으로 밀쳐 치웠다.

작심하고 다시 보고 싶은 새벽이었으나

허탕이었다.

 

그저께 밤,  녹초가 되어 일찍 잠이 들었다가 

새벽 세시쯤 설핏 잠이 깼을 때,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 사이로

나의 눈에 들어오던

은밀한 황.홀.

누군가라도 마구 깨워서 보여주고 싶었던

새벽 푸른 보름달.

 

백만마리의 요란한 촉수의 움직임 같았던

생각의 웅덩이에서

나를 가뿐히 건져올려주었다.

 

달빛만으로도,

 

'어쨌거나 그냥, 좋다'

 

 

 

 

 

 

 

 

"우리는 애인과 아내 사이에서 그들 생의 한 구간을 함께한다.

시작부터 후회였고 종국에도 후회가 될 것을 알지만,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체념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가엾고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비겁했다."

 

<완득이>로 유명한 김려령작가가 내놓은 최신작 <트렁크>의 한 구절을 따왔다.

그 소설 속에는

비용을 지불한 고객에게 한시적으로 배우자가 되어 주는 직업이 등장한다.

1년 계약직 부부.

 

그럴듯하고, 합리적이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은 설정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책이 될 수도 있겠으니.

'우리 지금부터 사랑하기로 해요,

혹은 우리 사랑한지 214일째'보다

 

'우리 딱 3년만 사랑하기로 해볼까요?

우리 사랑만료일 -145일'

 

환타스띡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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