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 rose for Emily

햇살이 밝아서

 

 

 

 

요 몇일 사이,

아침에 눈을 뜨면

21층 우리집 창문을 열고

천변의 벚꽃의 무사함을 확인한다.

비가 잦았던 탓에

벌써 꽃무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꽃이 피어날 때의 불안함은

누군가에게 빠져들어갈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꽃진 자리의 연두잎처럼

사랑하던 이의 푸른 정맥은 이내 기억 속에서만 두근거린다.

 

fragile,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속성일까.

 

 

 

 

 

 

 

 

봄은 모든 오래된 것들의 새로운 잔치라고 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생판 새로운 것들이 피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들이

만만한 봄을 맞아 

"저요, 저요, 저 여기 있었어요"

어깨를 들썩이며, 발돋움하며, 일제히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으니.

오래된 것들의 축제, 맞다.

 

 

벚꽃 무리 진 꽃그늘 아래 베개라도 놓고 잠들면

당신의 숨소리대신

봄의 푸른 정맥 소리가 두근두근 들릴지도 모르겠네.

그럴리가요.

 

 

 

 

 

 

 

 

 

 

 

 

 

 

 

 

 

'A rose for Em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날, 기울던 햇살  (0) 2015.04.15
카.형.같은  (0) 2015.04.10
사마귀처럼 안아줘  (0) 2015.04.06
4월  (0) 2015.04.02
호구(虎口)  (0) 201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