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오빠가 넷이고
바로 옆집에 살던 작은 집에도 사촌 오빠가 넷이나 있어서
우리집에는 항상 남자들이 바글바글했다.
개도 수케만 잘 되었다.
어쨌든 나는 어렸을 적 선머슴아처럼 놀았다.
두 살 위인 막내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안해본 것이 없다.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 날의 못치기,
오빠들의 공책의 두꺼운 커버를 뜯어다 만든 패치기,
비사표 성냥을 몰래 훔쳐 골마리에 숨기고 나가서 하는
겨울날의 불장난과 망우리 놀이,
독새풀이 돋는 초여름, 오빠가 삼지창으로 개구리를 잡아주면
도톰한 철사줄에 그놈들을 꿰어 들고 다니면 손끝에 느껴지던 묵직함.
"선아야, 밥먹어라"
고샅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들어 집에 들어갈 때까지
논둑으로 밭둑으로 바빴던 그 시절,
가장 재미난 것 중 하나는
'벌떡보'라 불리던 동네 가까이 있던 개천에서 노는 것이었다.
허리춤까지 찼던 깊이의 그곳에서 놀다가 가끔
개천 속 벽에 간간이 뚫려있던 팔뚝크기의 구멍에 손을 넣어보면
얌전히 몸을 숨기고 있던 내성적인 물고기나 말 수 적은 참게가 손 끝에 잡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여느때처럼 구멍에 팔뚝을 밀어넣고 손 끝에 잡히는 뭔가를 더듬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손 끝에 느껴지던 거역스러운 차가운 이물감.
아무리 털어내고 씻어내도 떨궈내어지지 않는
잊혀지지 않는 파충류의 감촉.
그 이후로도 나는 변함없이
의외로
호기심 많고, 겁대가리가 없고, 간혹 탐미적인 척도 했다.
손 끝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강 기슭의 아가리, 구녁들에
짧은 팔뚝을 디밀어넣곤 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그 아득한 깊이까지 빨려들어가곤 했다.
삶은 주머니로 가득한 옷과 같다 한다.
하지만
나의 신은 내게 호기심에 비례한 탄력성을 주시지 않은 까닭에
입었다가 벗어 걸어 놓은 옷은
그 이전의 형상으로 후딱후딱 돌아가지 못하고
그 불룩했던 주머니 크기만큼 축축 늘어져있다.
허발나게 뿌려 댄
분홍색 페브리즈 냄새만 쓸쓸하게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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